올해 바이오업계는 주요 기업들이 신약 연구·개발(R&D) 결과를 줄줄이 발표하는 전환점의 시기였다. 그러나 에이치엘비와 신라젠의 실패로 업계 전반에 먹구름이 드리우면서 이를 타개할 희소식이 절실하다. 이제 업계는 신약 개발의 마지막 관문이 남은 헬릭스미스와 메지온 등에 주목하고 있다.
4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바이오기업들이 연내 차례로 임상 3상 데이터를 내놓으며 신약 개발의 성패를 확인할 전망이다.
현재 발표가 가장 임박한 곳은 헬릭스미스다. 헬릭스미스는 1형 또는 2형 당뇨가 있는 환자 507명이 참여한 당뇨병성 신경병증 유전자치료제 ‘엔젠시스(VM202)’의 임상 3-1상을 진행하고 있다. 안전성 확보를 위해 추적관찰 기간을 3개월 늘리는 과정을 거쳐 드디어 9월 말(23~27일) 톱라인 데이터를 내놓을 예정이다. 톱라인 데이터는 임상 결과를 발표하기 전에 먼저 공개하는 핵심 지표를 말한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엔젠시스를 지난해 5월 재생의학첨단치료제(RMAT)로 지정했다. RMAT는 시장의 미충족 의료수요가 높고 재생의약 잠재력을 가진 세포 및 유전자치료제를 대상으로 한다. FDA 신속허가 프로그램을 통해 심사 기간이 단축되고, 승인 가능성이 커지는 장점이 있다. 업계는 이를 통해 엔젠시스가 단순한 통증치료제를 넘어 근본적 치료제가 될 가능성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한다.
당뇨병성 신경병증이란 당뇨병 환자에게 나타날 수 있는 말초 감각신경 합병증이다. 당뇨병의 3대 합병증 중 하나로 초기에는 양쪽 발이나 손이 저리거나 시리고 나중에는 감각이 둔해진다. 미국의 당뇨병 환자 30~50%가 이 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며, 치료제 시장은 1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헬릭스미스는 연내 엔젠시스의 임상 3-2상에 진입해 2021년까지 전체 적응증에 대한 FDA 생물의약품 허가신청(BLA)를 제출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계획대로 상용화하면 10조 원 시장 선점이 가능하다. 연간 약가는 5만~8만 달러(약 6000억~1억 원)로 기대하고 있다.
엔젠시스는 에이치엘비의 ‘리보세라닙’, 신라젠의 ‘펙사벡’과 더불어 국내 바이오업계에서 올해 가장 관심이 쏠린 파이프라인이다. 공교롭게도 리보세라닙과 펙사벡이 연달아 고배를 마시면서 업계의 촉각은 헬릭스미스를 향해 곤두서 있다. 성공하면 헬릭스미스는 단숨에 업계 선도 기업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에는 회사뿐만 아니라 잇따른 악재로 업계 전반이 침체할 것으로 우려된다.
한올바이오파마는 대웅제약과 개발하고 있는 안구건조증 치료제 ‘HL036’의 임상 3상 톱라인 데이터를 4분기에 내놓을 계획이다. HL036은 안구에서 염증을 유발하는 TNFα를 억제하는 새로운 작용기전을 가진 바이오의약품이다.
임상 3상은 안구건조증 환자 630명을 대상으로 미국 전역의 11개 임상시험센터에서 이뤄지고 있다. 지난해 150명을 대상으로 완료된 미국 임상 2상 시험에서는 건조 환경에 노출되기 전후 객관적인 안구건조증 징후(ICSS)와 주관적 증상(ODS)에서 모두 위약 대비 빠르게 개선하는 점을 확인됐다.
글로벌 안구건조증 치료제 시장은 4조 원 규모다. 고령화와 스마트폰 과다 사용, 미세먼지 등 환경변화로 연평균 7%씩 성장해 2027년 7조 원까지 확대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엘러간의 ‘레스타시스’와 노바티스가 6조 원에 사들인 ‘자이드라’가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두 치료제 모두 효과가 낮아 HL036이 개발에 성공하면 높은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FDA 허가 시점은 2022년으로 예상된다.
폰탄수술 환자 합병증 치료제 ‘유데나필’을 개발 중인 메지온도 연내 임상 3상 톱라인 데이터를 공개한다. 메지온은 이를 위해 미국심장학회(AHA 2019)에 초록을 제출했다. 발표 시점은 11월 16일(현지시간)로 잡혀 있다. 애초 올해 상반기 공개를 계획했지만, 병원 측정 수치에서 편차가 발견되면서 데이터 분석에 추가적인 시간이 소요됐다.
폰탄수술은 심실이 한 개만 있거나 한쪽 심실이 매우 작은 선천적 심장기형 어린이가 정상적인 심장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3단계 수술 중 마지막 단계다. 하지만 수술 후 정맥의 힘으로만 폐동맥으로 혈액이 순환하면서 정맥 압력이 높아져 간경화나 간암 등이 발생하고 혈전이 생겨 뇌경색으로 이어지는 등 여러 합병증이 발생해 생존 확률이 낮다.
유데나필은 연내 FDA에 신약허가신청(NDA)를 제출할 예정이다. FDA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된 유데나필은 우선 심사(최장 6개월 이내 검토)가 적용되면 내년 상반기 중 허가를 획득할 수 있다. 또한, 희귀성 소아질환을 적응증으로 하기 때문에 상용화 성공시 일반 신약보다 2년이 긴 7년의 독점기간이 부여된다. FDA를 통과하면 유럽에서는 추가 임상 없이 시장 승인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을 기준으로 폰탄수술 환자 수는 7만여 명에 이르며, 치료제 가격은 최소 6만 달러(한화 약 7000만 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