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영 부국장 겸 유통바이오부장
정부도 이 같은 호기를 놓칠세라 지난주 콘텐츠 산업을 혁신성장시대의 주력 산업을 키우기 위해 콘텐츠산업 3대 혁신전략’을 발표하며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특히 콘텐츠 제작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2022년까지 1조 원 이상의 정책금융을 추가 공급하기로 했다. 콘텐츠는 결국 소비재, 관광 산업 등 다양한 부가 가치를 창출하며 경제발전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처음으로 콘텐츠 관련 행사에 참석해 문화 콘텐츠가 우리의 미래 먹거리가 될 것임을 강조하며 힘을 실어줬다.
특히 BTS가 이끄는 한류가 이전 한류와 차별화되는 점은 주로 아시아권에서 소비되던 한류가 유럽, 미국, 중남미 등 글로벌 전역으로 속속들이 전파되고 있다는 것이다.
‘겨울연가’ 드라마로 일본에서 열풍을 일으키기 시작한 한류는 K팝, K뷰티, K푸드까지 많은 분야로 파급효과를 일으켰고 동남아시아, 중동, 중남미 등으로 확산됐지만 미국이나 유럽까지 압도했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BTS가 전 세계가 주목하는 ‘21세기의 비틀스’로 떠오르면서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선진국에서부터 지구 반대편 작은 시골 마을 아이들까지 BTS의 노래를 부르고 BTS의 춤을 춘다.
프랑스 10~20대 학생들로 구성된 한류팬 90여 명은 8월 초 K-팝을 활용한 장기체류형 상품을 통해 20일간 한국을 찾기도 했다. 이는 BTS 열풍이 방한 관광 수요로까지 연결된 사례다. 관광공사에 따르면 프랑스에서 한국을 찾는 관광객은 2018년 연간 10만 명이 넘어섰다.
이달 5일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유명 백화점인 블루밍데일스는 한국 브랜드 25개를 초청한 기획판매전 ‘윈도 인투 서울’을 열었다. 이 백화점은 K팝, K뷰티, K푸드 등 한국 상품이 인기를 끌자 한류의 신소비층으로 떠오른 밀레니얼 세대를 잡기 위해 이런 행사를 마련했다고 한다. 실제로 매장을 찾은 현지 소비자들 대부분이 BTS 때문에 한국을 알게 됐다는 전언이다.
2012년부터 글로벌 무대에서 세계 최대 한류 축제인 케이콘(KCON)을 열어온 CJ그룹은 올해 8월 미국 LA 행사에서 누적 100만 명이 이 행사를 찾았다. 케이콘은 2014년 방탄소년단이 신인가수로 등장했던 무대이기도 하다. CJ그룹은 올해 미국에서 대규모 식품업체를 인수하면서 그간 중국 일본업체들이 주도해온 미국 만두 시장에서 내년에 K만두가 1위에 올라설 것으로 보고 있다.
이렇게 드라마와 음악 등 콘텐츠로 시작된 한류 열풍이 음식, 옷, 화장품 등 소비재까지 확산되고는 있지만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90년대 초중반까지는 ‘일류(日流)’나 홍콩 느와르 영화 등이 아시아 문화 시장을 쥐락펴락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사그라들었다. 중국은 막강한 자본력과 공산당 주도 아래 직접 콘텐츠를 제작해 글로벌 시장에서 실력자로 힘을 키우고 있다. 더욱 위협적인 것은 연간 80억 달러를 콘텐츠에 투자하는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미디어 기업은 이미 국내 시장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이다.
올 초 청와대경제과학특별보좌관에 발탁된 이정동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는 자신의 저서(‘축적의 길’, ‘축적의 시간’)를 통해 "한국의 산업구조는 도전과 실패, 시행착오가 축적돼 혁신으로 전환될 수 있는 시간과 시스템이 없었다"면서 실패가 쌓여야 혁신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문화 콘텐츠 산업 역시 마찬가지다. 많은 이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상상하고 도전해 만들어 낸 콘텐츠가 BTS 같은 슈퍼스타로 발굴·육성될 수 있도록 유연한 지원 시스템이 뒷받침돼야 지속적인 한류가 가능할 것이다. hy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