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엄마 오늘 늦을 것 같아. 밥 잘 챙겨 먹고 쉬어. 항상 (엄마가) 응원하는 것 알지? 우리 아들 화이팅!"
냉장고에 붙어있는 어머니의 손 메모. 마흔 자도 안 되는 짧은 글이지만, 아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 그 이유는 뭘까? 어머니의 손글씨에 담겨있는 그 마음이 전해지기 때문 아닐까?
'애인을 사귀려면 손글씨부터 봐야 한다.'
몇년 전 온라인 커뮤니티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기자의 시선을 붙든 문장이다. 내용은 손글씨를 통해 애인이 어떤 사람인지 판단할 수 있으며, 그 사람과 오래 만나도 되는지 알 수 있다는 것.
글에 따르면, 우선 문장의 기울기로 사람의 심리상태를 알 수 있다고 한다. 문장의 끝이 점점 위로 올라가는 사람은 낙관적이며 야망이 있는 성격이고, 점점 아래로 처지는 사람은 피로하거나 비관적인 성격이라는 설명이다. 또한, 문장의 기울기가 오르락내리락하는 사람은 정서적으로도 혼란스러운 상태라는 것.
글씨의 기울기로도 심리 상태를 판단할 수 있다는 내용도 있었다. 글씨의 기울기가 왼쪽으로 기울어지면 어머니와의 유대 관계가 돈독하며, 남성보다는 여성에게서 왼쪽으로 기울여지는 경우가 두드러진다는 그럴듯한 주장이다.
손글씨 하나로 상대방의 다양한 감정을 읽을 수 있다지만, 요사이 손글씨를 찾아보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학교에서도,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야외에서도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일상화된 오늘날 손글씨 자체를 쓸 일이 거의 없다.
결국, 사람들은 소수의 똑같은 글꼴로 된 글씨를 읽고 소통한다. 이제는 광고 메일만 쌓일 뿐, 편지 형태의 이메일로 소통하는 경우도 별로 없다. 대다수는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인스타그램 등과 같은 메신저나 SNS를 통해 대화하고, 짧은 대화 중심의 커뮤니케이션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다 보니 우리말도 마구잡이식의 변형이 일어나고 있다. 짧은 단어도 더 짧게 줄이거나, 무분별한 신조어가 날마다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한글날을 앞두고 한글을 사랑하자는 취지의 캠페인도 잇따르고 있다.
기자의 눈에 띈 것은 한글날을 기념해 손글씨를 공모받고, 그중 109개를 글꼴로 제작해 무료 배포하는 '한글한글 아름답게'라는 네이버 캠페인이었다. 네이버가 '나눔손글씨' 글꼴을 제작하는 것은 10년 만이다.
캠페인은 9월 4일부터 같은 달 24일까지 진행했다. 20일간 접수된 손글씨는 2만5000여 건. 네이버는 공모전 신청자가 제출한 '내 손글씨를 설명하는 소개말'을 기준으로 109종을 선정해 '나눔손글씨' 글꼴로 제작했다.
기자도 해당 공모전에 응모했다. 공모전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예상보다 많은 글자를 손글씨로 써야만 했다. A4 용지로 6장에 달하는 분량이었다.
"가, 고, 괘, 그, 깨, 꽈, 꼬, 끄, 냐, 뇌, 누, 느, 댸, 둬, 뒈, 드, 떠, 또, 뛰, 뜨, 레, 롸, 류, 르…." 평상시 쓰이지 않는 글자들을 받아쓰기식으로 적도록 해 놓아 다소 의문이 들었지만, 열심히 손글씨로 따라 썼다.
뒷장으로 넘길수록 난이도는 더 놓아졌다. "곾, 굓, 꺉, 꾆, 냵, 눪, 뉇, 늜, 덡, 돒, 똾, 뜟, 룆 릧, 몥, 뭪, 뫻, 뵧, 뽢, 쉛, 쌽, 쒎, 읐…."
글자를 따라 쓰면서도 맞게 쓰는 건지 헷갈릴 정도로 희귀한 글자의 행렬이 이어졌다.
세 번째 페이지부터는 각종 특수문자와 숫자, 알파벳도 등장했다.
다섯 번째 페이지는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과 훈민정음에 대한 이야기를 받아쓰도록 했다.
"과학적이고 단순한 훈민정음체. 세종은 1443년 한글을 창제하고 3년 후 이를 해설하는 훈민정음을 편찬하였습니다. 한글은 소리가 나오는 입속 모양을 본뜬 닿자와 하늘, 땅, 사람을 추상화한 홀자를 서로 조합하여 소리 내는 구조입니다. 모양이 단순 정교하여 점, 가로선, 세로선, 빗금, 동그라미만으로 모든 글자를 표현할 수 있습니다."
길지 않은 설명이지만, 받아쓰면서 속으로 읽다 보니 한글의 위대함이 좀 더 가까이 느껴졌다. 이번 공모전에 참여한 사람이라면, 이 글을 받아쓰면서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마지막 페이지는 "한글한글 아름답게 앞으로 쓰여질 우리의 이야기를 응원합니다"라는 글을 받아적도록 하는 한편, 자신이 좋아하는 한글 문장을 적도록 했다.
기자는 "해가 뜨기 전 새벽이 가장 어두우니까 먼 훗날에 넌 지금의 널 절대로 잊지 마. 지금 네가 어디 서 있든 잠시 쉬어가는 것일 뿐 포기하지 마 알잖아"라는 방탄소년단(BTS)의 'Tomorrow' 노래 가사를 받아 적었다.
네이버에서는 공모전에 제출할 글꼴의 이름과 소개말을 적도록 했다. 기자는 글꼴의 이름으로 이투데이의 뚯을 담아 '이투스타일'이라고 신청했다. 소개말에는 그동안 멀리했던 손글씨를 써보면서 나의 글씨를 한 번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가 됐고, 한글날 뜻깊은 캠페인 활동이 된 것 같다고 적었다.
네이버는 이렇게 접수된 손글씨를 OCR(광학 문자 판독) 기술로 컴퓨터에 인식시키고, 사전에 딥러닝 기술로 학습한 모델이 손글씨의 특징을 분석해 글꼴로 제작한다.
글꼴을 제작하는 데는 이미지 생성 기술이 접목한다. 네이버의 AI(인공지능) '클로바'는 약 250자의 손글씨만으로 사용자의 손글씨를 학습하고, 이를 1만1172개의 글자 조합이 가능하도록 만든다.
이렇게 완성된 109개의 손글씨 폰트는 네이버 '한글한글 아름답게' 캠페인 홈페이지와 클로바 손글씨 공모전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다.
한글날을 앞두고 한글의 의미를 되새기려는 노력은 손글씨 공모전 말고도 더 있다.
최근 SK텔레콤은 통신용어 등을 바른 우리말로 쓰자는 내용의 '우리말 교육책'을 출간했다. '사람 잡는 글쓰기'라는 제목의 책을 통해 SK텔레콤은 '고객 마음을 사로잡는 글쓰기를 하자'는 의미를 담았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는 한글날을 맞아 충북과 서울 소재 초·중학교에서 특별 공개수업을 진행한다. 주제는 바로 '친구야! 고운 말 쓰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