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후의 경제]는 세상에 존재하는 건강한 덕후들을 통해 해당 산업을 조망하는 코너입니다. 덕질이 우리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고, 더불어 ‘덕후’의 삶도 전하겠습니다. 주위에 소개하고 싶은 덕후가 있다면 언제든지 제보해주시기 바랍니다.
어느 날 갑자기 내게 초능력이 생긴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만일 아이언맨 슈트가 내게 있다면 난 지구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싸울 수 있을까.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 만화나 영화 속 영웅들의 모습을 보면서 '만일 내가 영웅이라면'이라는 상상을 한 번쯤 해봤을 것이다. 세계를 악의 소굴로 만들려는 악당들과 이들을 해치우는 영웅. '권선징악'이라는 교훈 속 누구에게나 가슴 속에 자리한 영웅은 누구일까.
이번 '덕후의 경제'에서는 마블의 영웅 캐릭터에 푹 빠졌다는 '마블 덕후' 김민철(34) 씨를 만나 마블 굿즈 수집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20대 후반 시작한 취미 "무미건조한 인생에 색다름을 안겨"
김민철 씨는 현재 디자인 관련 업종에서 일하고 있다. 마블 굿즈 수집도 이런 디자인적 호기심과 필요에서 시작됐다.
"20대 후반에 회사 동료가 '핫토이' 액션피규어 제품을 보여줬어요. 퀄리티가 생각보다 너무 뛰어나더라고요. 이후 제가 좋아하는 아이언맨 캐릭터를 구매하면서 본격적으로 마블 굿즈 수집에 뛰어든 것 같아요."
핫토이는 홍콩에 본사가 위치한 피규어 회사다. 프로토타입(오리지널 모델)과 거의 차이가 없을 정도로 뛰어난 완성도의 제품을 소비자에게 판매해 핫토이 피규어의 수요는 높은 편이다. 주로 12인치 피규어를 제작 및 판매하는 회사로, 설립 초기에는 밀리터리 액션 피규어를 주로 발매했지만, 현재는 영화나 애니메이션, 게임 캐릭터까지 피규어 라인업을 확대하고 있다.
핫토이를 통한 제품 구매는 대개 예약 구매 형태로 이뤄진다. 핫토이는 영화 개봉에 맞춰 새로운 액션피규어 제작에 들어간다. 보통 영화 개봉 1년 전부터 새로 출시될 모델의 예상 디자인을 보여주고 예약금을 입금한 뒤 제품 출시일을 앞두고 잔금을 결제하면 구매가 완료되는 형태다.
물론 이처럼 예상 디자인만 보고 구매하기 때문에 실제로 제품이 출시됐을 때 예상 디자인과 다른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예약판매가 아닌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선주문 형태로 구매가 이뤄져요. 핫토이 측에서 '내년에 이런 영화가 개봉하는데 우리는 영화 속 이런 캐릭터를 액션피규어로 제작할 예정입니다'라고 안내하면서 예상 디자인을 소개하죠. 그런데 제품은 예약 구매한 1년 뒤에야 받아볼 수 있기 때문에 처음에 판매 사이트에서 본 사진과 다른 제품을 만나는 거죠. 때로는 예상보다 퀄리티가 떨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사진보다 더 뛰어난 경우도 많습니다."
◇"수집한 마블 피규어만 100개 이상…수천만 원 썼어요"
핫토이에서는 DC 코믹스, 마블, 스타워즈 등 다양한 시리즈의 피규어를 제작 중인데 왜 그는 마블 피규어를 고집했을까.
"일반적으로 DC 코믹스와 마블에 대한 인지도가 높잖아요. DC 코믹스 캐릭터도 처음에 일부 모으다가 정리했지만, 마블과의 차이는 그게 큰 것 같아요. 두 회사 캐릭터 모두 영웅이지만, 마블이 좀 더 현실감이 있죠. DC 코믹스 영웅은 신에 가깝고, 마블의 영웅은 사람에 가깝잖아요. 그런 부분에서 (마블 캐릭터가) 대중적으로 더 친숙하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김 씨가 이렇게 수집한 마블의 핫토이 제품은 50여개 정도. 여기에 각종 피규어나 프라모델을 더하면 100개가 넘는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피규어 중에도 단연 눈에 띄는 것이 있다. 바로 아이언맨이다. 그가 피규어를 위해 마련한 장식장 속에서 아이언맨의 피규어를 가장 많은 만날 수 있다.
"아이언맨은 디자인적 요소가 제 마음을 가장 사로잡았죠. 마블 코믹스에 등장하는 아이언맨의 모습은 다소 단순하게 표현됐는데, 영화 속 캐릭터는 달랐어요. 부품 하나하나가 눈에 띄게 묘사됐고 디자인이 멋있었어요. '아이언맨3'을 보면 수많은 아이언맨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대다수를 수집한 것 같아요. 이렇게 모은 아이언맨 피규어만 30~40개 정도 될 것 같네요."
그는 아이언맨을 비롯한 마블 피규어와 각종 프라모델을 수집하는 데 수천만 원이 소요됐다. 그는 "경제생활을 하면서 마블 굿즈 수집을 시작한 덕분에 큰 무리는 없었죠"라며 "특히 대다수 핫토이 제품이 선주문 개념으로 구매가 이뤄지기 때문에 예약금만 먼저 지불하고 이후 순차적으로 잔금만 지불하면 돼 예산을 적절히 배분해서 사용할 수 있었어요"라고 말했다.
◇'스타워즈'·'다크나이트 시리즈' 캐릭터도 애착 커
김민철 씨가 수집하는 피규어는 주로 마블 캐릭터지만, 꼭 마블 캐릭터만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그가 마블 캐릭터 외에 애착을 가지는 캐릭터로 '스타워즈' 시리즈와 '다크나이트' 시리즈를 꼽을 수 있다.
"스타워즈 시리즈는 캐릭터 디자인이 유니크해서 마음에 들었어요. 그중에서도 다스베이더나 스톰투르퍼는 캐릭터가 독특하잖아요. 다크나이트 시리즈는 DC 코믹스 작품이지만 굉장히 현실과 비슷한 영화였죠. 그런 점에서 영화 자체도 좋았고 캐릭터도 가장 마음에 들었어요."
◇"키덜트 문화의 부흥이 주변의 시선도 바꿨어요"
"2010년을 기점으로 주변의 시선이 변한 것 같아요. 예전 같았으면 성인 남성이 이렇게 피규어를 모은다고 하면 '애들도 아니고, 철없어 보인다'는 반응이 대다수였을 텐데, 지금은 대놓고 이런 피규어 수집이 취미라고 해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적어진 것 같아요.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키덜트 문화의 부흥이 이런 부분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한 것 같네요."
아이(Kid)와 어른(Adult)의 합성어인 '키덜트'는 어른이 됐어도 어린 시절의 취미를 그대로 유지하거나 회귀하는 경우를 통칭하는 말이다. 과거에는 키덜트 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을 향해 '사회부적응자'나 '애들이나 하는 취미'로 몰리기 쉬웠으나 최근에는 키덜트도 하나의 대중문화로 존중받고 있는 것.
백화점이나 완구점, 영화관, 인터넷쇼핑몰을 중심으로 키덜트를 겨냥해 특별히 제작한 캐릭터 의류, 액세서리, 장난감, 만화영화 등이 다양하게 등장하며 새로운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국내 키덜트 시장 규모는 2014년 5000억 원대에서 지난해 1조 원대를 넘어섰다. 매년 20~30%씩 급성장하며 주목받고 있다.
김민철 씨는 이런 취미생활로 인해 얻은 것도 많다고 밝혔다.
그는 "이런 취미생활이 무미건조한 인생에 있어서 삶의 활력소가 되는 것 같아요"라며 "평소 직장에서 일하면서 만날 수 있는 디자인이 아닌, 새로운 환경을 불러일으키는 점만으로도 강점이 되죠"라고 전했다. 이어 "(마블 굿즈 수집 취미는) 내가 한동안 일하면서 고생한 나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해요"라며 "취미생활에 굉장히 만족하는 편"이라고 덧붙였다.
끝으로 김민철 씨는 "나와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 누구나 스스로가 만족할 수 있는 즐거운 취미활동을 즐겼으면 해요"라며 "주변에서도 우리와 같은 사람을 편견 없이 바라봤으면 좋겠어요"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