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돼지열병(ASF)으로 돼지고기 파동을 겪고 있는 중국에서 ‘인공고기’가 뜨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피치솔루션스가 9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돼지고기의 최대 소비국이자 생산국인 중국은 ASF 여파로 돼지고기 공급에 엄청난 타격을 받았다. 지난해 8월 중국에서 ASF가 처음으로 확인된 지 불과 1년 만에 중국에서 사육하는 돼지 수가 전년 동기 대비 38.7%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에서 사육되는 돼지 수는 작년 말 기준 4억2800만여 마리로 1억 마리 이상 감소한 것으로 파악됐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중국에서 돼지 117만 마리가 폐사했다고 밝혔다.
그 여파로 돼지고기 가격이 폭등하면서 장바구니 물가가 치솟고 있다. 올해 8월 돼지고기 소매 가격은 전년 동기 대비 1.5배 이상 뛰었다. 지역에 따라서는 3배 이상 급등한 곳도 있다. 서민 사이에서는 “돼지고기 가격이 너무 비싸 사먹을 수가 없다”는 앓는 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돼지고기 가격 상승과 함께 닭고기와 소고기 가격도 동반 상승하면서 ASF로 인해 중국인들의 장바구니 물가에 비상이 걸렸다.
중국의 돼지고기 사랑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데이터에 따르면 2018년 세계 돼지고기의 46%가 중국에서 소비됐다. “돼지 농사가 활발해져 풍작을 이루면 천하가 안정”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중국에서 돼지고기는 일반 시민들의 생활과 떼려야 뗄 수가 없다.
중국 서민들과 밀접한 식량인 만큼 가격 폭등에 대한 중국 정부의 위기 의식도 커지고 있다. 9월 중국은 “돼지고기의 충분한 공급이 중국 경제와 사회의 안정 유지를 위해 중요하다”며 위기감을 표출했다. 급기야 10월 1일 건국 70주년 기념일에 앞서 양돈 농가 지원책을 내놓고 정부가 비축하고 있던 냉동 돼지고기 3만t을 방출했다. 돼지고기 가격 상승이 계속되면서 비판의 화살이 시진핑 지도부로 향할 것을 우려해 서둘러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다급해진 중국 정부는 최근 ASF의 확산을 막기 위해 지방 정부에 대한 관리도 강화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극단적 처방까지 불사하고 있다. 돼지뿐만 아니라 개, 고양이, 닭 등 바이러스를 확산시킬 수 있는 매개체는 모조리 살처분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양돈 농가에 “털이 있는 동물은 모두 살처분하라”고 통보한 지방자치단체도 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인터넷에서는 합리적이지 않은 대응이라는 비판이 쇄도하기도 했다.
돼지고기를 둘러싸고 중국에 비상이 걸린 가운데 수요를 맞추기 위해 ‘수입 대폭 늘리기’ 등 대안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피치솔루션스 보고서는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새로운 대안들이 생겨나고 있다면서 그중 하나가 인공고기라고 지적했다.
2018년 중국의 식물성 고기 산업 규모는 9억10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14.2% 증가했다. 인공고기 산업의 선두주자인 미국이 6억8400만 달러였던 것과 비교하면 중국의 인공고기 수요가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 투자은행 제프리그룹의 사이먼 파월 연구원은 “ASF로 중국의 돼지고기 수요가 2000만t 감소했지만 그 대안으로 소비자가 인공고기에 눈을 돌렸다”면서 “아이러니하게도 ASF가 중국의 대체 고기 산업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고 평가했다.
피치솔루션스 보고서는 중국에서 인공고기 시장이 부흥하는 또 다른 요인으로 중국인의 요리법을 꼽았다. 인공고기의 주 원료인 콩이나 밀로 만든 고기는 이미 오래전부터 중국 음식에서 사용돼 왔다는 설명이다.
그런 측면에서 일부 전문가들은 “중국인들은 1000년 전부터 인공고기를 먹기 시작했다”면서 “작금의 인공고기 수요 증가는 완전히 새로운 단계로의 진입이라기보다는 오랜 전통의 다음 단계로 봐도 무방하다”고 평가했다. 이밖에 환경, 윤리, 건강 측면도 중국의 인공고기 수요 증가를 뒷받침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 같은 인기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는 인공고기가 중국 전역에 보급되기까지는 시일이 걸릴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돼지고기는 중국인들의 민족 정서와 식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