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간 환경부 국정감사에서 계속 지적돼온 문제가 영수증 용지의 환경호르몬 검출이다. 올해 국감에서도 더불어민주당 신창현 의원이 여러 소비재 매장이 발급하는 영수증과 은행의 순번대기표에서 환경호르몬인 비스페놀A가 다량 검출됐다는 분석결과를 발표했다.
분석대상이 소비자가 자주 찾는 영화관, 만두전문점, 대형마트, 의류판매점, 주스 판매점 등의 영수증이어서 소비자들의 불안감이 컸다. 비스페놀A 검출량도 엄청나서 한 은행 순번표에서는 유럽연합(EU) 기준치의 60배가 넘는 수치가 나왔다. 영화관 순번표와 음식점 영수증은 50배를 넘었다.
영수증과 순번표 용지로 사용되는 감열지는 열을 가하면 그 위치에 색이 나타나는 방식으로 글자를 새기는데, 비스페놀A는 발색 촉매제로 사용돼 감열지 표면에 코팅된다.
그런데 이 비스페놀A를 프랑스, 독일 등 EU 국가들은 생식독성 1B등급, 안구피해도 1등급, 피부민감도 1등급, 1회 노출 특정표적 장기독성 1등급 등으로 분류해 2016년부터 제조ㆍ판매ㆍ사용 제한 물질로 규제하고 있다. 내년 1월부터는 중량 기준 0.02%(1g당 200㎍) 이상 비스페놀A가 포함된 감열지의 사용을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국감 때마다 빠지지 않고 지적되는데도 별다른 대책이 마련되지 않고 있는 우리와는 사뭇 대조적이다.
내 경우도 커피숍이나 식당에서 깜빡 잊고 미발급을 요청하지 않아 받은 신용카드 영수증과, 사무실 회계처리상 필요한 택시비 영수증 등 하루에 몇 장씩 감열지 영수증을 만지게 된다. 이 때마다 필요 없는 영수증은 버리려고 휴지통을 찾을 때까지 영수증을 손에 쥔 채 비스페놀A 노출 우려로 꺼림칙해한다.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신용카드와 체크카드 결제를 통해 발급된 종이영수증이 128억9000만 건이라니, 실제로 많은 소비자들이 자주 비스페놀A에 노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피부를 통해 체내로 흡수되는 비스페놀A는 입으로 들어온 것보다 체내 잔류기간이 훨씬 길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종이영수증이 일으키는 환경 파괴도 심각하다. 종이영수증 128억9000만건 발급을 위해 무려 12만9000그루의 나무가 베어지고, 한해 버려지는 종이영수증 쓰레기만 9400톤에 이른다. 이렇게 버려지는 영수증을 발급하는 데 1031억 원의 비용이 든다.
지난 8월 말 환경부, 기획재정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13개 대형 유통업체와 ‘종이영수증 없애기 대형 유통업체 협약식‘을 열고 공동대응에 나서기로 했지만, 근본적인 문제 해결책으로는 중과부적이다. 이 협약에 참여한 유통업체들의 연간 종이영수증 총 발급량은 지난해 기준으로 14억8690만 건. 이는 국내 전체 발급량(128억9000만 건)의 11% 남짓 되는 수준이다.
전자영수증 활성화를 위해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손질해야 할 것은 부가가치세법 개정이다. 기획재정부는 소비자 의사에 따라 카드 결제 시 종이영수증을 발급하지 않을 수 있도록 부가세법 시행령 개정을 추진 중이며, 내년 2월 시행이 목표다. 여전히 전자영수증을 의무화하기보다 소비자에게 선택권을 주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이미 일부 카드사는 지난 7월부터 영수증 선택발급제 시행에 들어갔다. 선택발급제란 소비자가 종이영수증을 요구할 때만 발급해 주는 제도다. 혹시 소비자가 영수증이 필요하면 카드사 홈페이지와 애플리케이션에서 챙기면 된다.
그런데 이 전자영수증에는 한번 결제할 때 사용한 총액만 표시될 뿐 품목정보는 담겨 있지 않다. 이에 따라 나중에 교환이나 환불이 필요한 경우 사업자와 소비자 사이에 분쟁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이왕이면 제도를 본격 도입할 때 교환ㆍ환불의 편의성을 높일 수 있는 상세 구매품목과 카드 이외 현금ㆍ포인트 결제까지 포함한 모든 결제 내역, 공급자의 등록번호, 상호, 성명 등을 필수로 표시하는 규격화된 전자영수증을 의무화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결제회사 중심이 아닌, 거래 당사자인 소비자와 매장이 실생활에서 필요한 전자영수증의 형태가 어떤 것인지 정부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정책성과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