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3일 금강산관광지구를 시찰하면서 “보기만 해도 기분 나빠지는 너덜한 남측 시설들을 싹 들어내라”고 지시했다. 이는 김 위원장이 지난해 9월 평양공동선언에 포함된 금강산관광 재개를 남측에서 아직 이행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을 강력하게 표현한 것으로 읽힌다. 2200억 원이 넘는 자금이 투입된 제반 시설들이 날아갈 위기에 처하자 현대아산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금강산관광은 김정은 위원장의 부친 김정일 국방위원장 집권 시절 남측의 현대그룹과 함께 추진한 대표적인 남북 경제협력사업이다. 2008년 7월 박왕자씨 피살 사건으로 11년 넘게 중단된 상태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등은 이날 김 위원장이 금강산 일대 관광시설을 현지지도하면서 “손쉽게 관광지나 내어주고 앉아서 득을 보려고 했던 선임자들의 잘못된 정책으로 금강산이 10여 년간 방치돼 흠이 남았다”면서 이같이 밝혔다고 전했다.
또 김 위원장은 “금강산 관광을 남측과 함께 진행한 선임자들의 의존정책이 매우 잘못됐다”면서 ‘자력갱생’ 기조에 따라 금강산지구 재건설에 들어갈 것을 시사했다. 반면 김 위원장은 남측 시설 철거와 관련해 “남측의 관계부문과 합의하라”고 밝혔다. 이는 향후 남북 실무협의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전망된다.
김 위원장은 “땅이 아깝다”면서 “국력이 여릴(약할) 적에 남에게 의존하려 했던 선임자들의 의존정책이 매우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김 위원장이 부친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결정한 남북경협사업인 금강산 관광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것이다.
이 같은 보도에 현대그룹과 현대아산은 당혹스러운 분위기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이날 그룹 내 남북경협 태스크포스(TF)로부터 보고를 받은 데 이어 대책 회의를 주재할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그동안에도 섣부른 낙관을 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차분하게 상황 추이를 지켜볼 것”이라면서 “특히 당국과 긴밀하게 협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그룹은 최근 남북, 북ㆍ미관계가 급진전 되면서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한 준비에 매진해 왔다. 앞서 현정은 회장은 지난해 11월 금강산관광 20주년 남북공동 행사를 위해 금강산을 방문한 자리에서 “관광 재개 승인만 나면 3개월 이내에 준비를 마칠 수 있도록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현대그룹에 따르면 현대아산은 지난 1999년 이후 현재까지 금강산관광지구 내 유형자산 구축에 투자한 금액은 총 2268억 원에 이른다. 아울러 현대아산은 올해 초 대북사업에 소요되는 자금 충당을 위해 414억 원의 유상증자를 단행했다. 현대아산은 이를 통해 확보한 자금 중 320억 원을 금강산관광지구의 시설 보수 및 장비, 비품 구매에 투자할 예정이었다.
금강산 관광지구에 골프장과 리조트 운영권을 갖고 있는 아난티 역시 앞길이 캄캄해졌다. 2008년 금강산 고성봉 168만㎡ 대지에 850억 원을 투자해 골프장과 온천리조트를 완공했으나 개장 2달 만에 관광객 피격사건이 발생하면서 운영이 잠정 중단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