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찬 용인대 중국학과 교수/중국경영연구소 소장
1980년대 초반 수출 및 투자 주도형 발전모델로 시작한 중국은 이제 14억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한 소비 주도형 발전모델로 전환하고 있다. 2018년 기준 소비가 중국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0%로, 중국이 미국과의 무역전쟁에서 버티면 이긴다는 이른바 ‘기다림의 성공학’은 중국의 막강한 소비경제가 지탱해 준다는 자신감의 표현일 것이다. 비록 미중 무역전쟁과 중국경제 하방 압력에 따라 내수경기도 주춤하고 있지만, 소매판매 증가율은 여전히 8%대 안팎의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11일은 6억 명 이상의 중국인이 물건을 산다는 중국 광군제(光棍節, 11월 11일· 雙十一) 날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건을 다 살 수 있다고 애기하는 중국 광군제는 올해로 11번째를 맞이했다. 2009년 알리바바(티몰+타오바오) 하루 매출액 5400만 위안(약 89억 원)으로 시작한 광군제는 10년째인 작년 2135억 위안(약 35조5000억 원)으로 약 3000배 급성장했다. 중국 전자상거래 2위 기업인 징둥닷컴은 1598억 위안(약 26조5000억 원)으로 하루에 두 회사가 올린 매출액만 62조 원이 넘는 규모다.
광군제는 이제 중국 소비자뿐만 아니라 전 세계 230여 국가에서 물건을 주문하는 글로벌 쇼핑축제로 자리매김했다. 알리바바의 경우 당일 13억 건이 훨씬 넘는 주문 물량이 전 세계로 뻗어나간다. 미국의 거의 30일치, 영국의 5개월치 택배물량이다. 이날 하루 필자는 중국 도심에서 수없이 지나가는 택배차량을 보면서 다시 한번 중국의 소비파워를 실감할 수 있었다. 중국 소비자의 95%는 스마트폰으로 물건을 구매하고, 도시뿐만 아니라 농촌에 있는 농민들의 주문량도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애플, 나이키, 아디다스, P&G, 유니클로 등 외국계 브랜드의 경우도 행사 시작 30분도 안 되어서 1억 위안(약 165억 원)을 가뿐히 돌파했다. 그렇다보니 세계의 모든 글로벌 기업들이 11월 11일 광군제 하루를 위해 엄청난 물량을 여름부터 준비한다.
특히, 중국 중산층이 늘어나면서 2013년 기점으로 GDP에서 차지하는 3차 서비스산업 비중이 2차 제조업 비중을 추월했고, 2018년 기준 3차 산업 비중이 52.2%를 차지하면서 중국 산업구조는 3차 산업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중국 내 매장 수가 4000개가 넘는 미국 커피체인 스타벅스의 순이익도 2018년 전년 대비 60% 이상 증가했고, 중국 내 아이맥스(IMAX) 영화관 역시 전년 대비 순이익이 50% 늘어났다. 변화된 중국 소비자와 소비파워의 한 단면이다.
중국은 올해 6% 경제성장률 방어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광군제 또한 그러한 소비부양 효과 차원에서 중국 정부는 지원을 아끼지 않는 듯하다. 현지 유통 플랫폼 기업과 함께 공격적 소비확대 정책을 만들어 내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이 본격화하기 시작한 2018년 하반기부터 ‘정보 소비 3년 행동계획(2018-2020)’, ‘소비 메커니즘 개선촉진 방안(2018-2020)’, ‘공급 최적화를 통한 소비의 안정적 성장 및 내수시장 육성방안(2019)’ 등 내수 진작을 위한 각종 소비확대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주요 소비촉진 정책을 살펴보면 △자동차 소비 확대 △농촌 소비 업그레이드 △도시화·고령화에 따른 소비 수요 확대 △상품 및 서비스 품질 개선을 통한 고품질 소비 확대 △소비시장 환경 개선 등으로 요약된다. 중국은 미중 무역전쟁 장기화, 세계경제의 불확실성 등으로 인한 중장기적 경기하방 압력 속에서 소비진작을 통해 성장의 모멘템을 지속시키려 하고 있다.
올해 중국 광군제 행사는 단순히 쇼핑축제의 개념을 넘어 중국 소비파워의 건재함을 미국에 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한국이다. 미중 양국 사이에 끼여 어려움을 하소연할 것이 아니라 최대한 그들을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우리와 비슷한 처지에 있으면서 양국을 잘 활용하고 있는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최근 일본 기업의 중국 내 활약상이 눈부시다. 한일 간 무역마찰의 틈을 타 일본 부품소재 기업과 중국 기업 간 협력이 강화되고 있고, 일본 화장품이 한국 상품 점유율을 빼앗아가는 등 소비재 기업들의 중국 내 매출도 계속 올라가는 추세이다. 지난 몇 년간 광군제 행사의 국가별 판매 순위를 보더라도 일본이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다행히 사드 사태 이후 주춤한 한국 제품에 대한 수요도 점차 나아지는 분위기이다. 서둘러야 한다. 변화되는 중국 소비의 방향성과 트렌드를 꿰뚫는 민첩한 대응과 적극적인 시장 접근 노력이 필요하다.
박승찬
중국 칭화대에서 박사를 취득하고, 대한민국 주중국대사관 경제통상관 및 중소벤처기업지원센터 소장을 5년간 역임했다. 또한 미국 듀크대학에서 교환교수로 미중관계를 연구했다. 현재 사단법인 중국경영연구소 소장과 용인대학교 중국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