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인터넷 판도를 뒤흔들 네이버 산하 메신저 앱 라인(LINE)과 일본 최대 포털사이트 야후재팬의 통합 협상은 올여름부터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라이벌 관계였던 두 회사를 결합시킨 배경에는 ‘GAFA(구글·애플·페이스북·아마존)’로 불리는 미국 거대 정보·기술(IT)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혼자선 살아남을 수 없다는 위기감이 있었다고 14일 보도했다.
이런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올여름 도쿄의 한 호텔에서 야후재팬 모회사인 Z홀딩스의 가와베 겐타로 사장과 이데자와 쓰요시 라인 사장이 머리를 맞댔고, 논의가 구체화하면서 9월 각사의 모회사인 일본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과 한국 네이버 이해진 의장 등 수뇌부가 다시 만나 통합 협상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당시 손 회장은 “소프트뱅크그룹이 통합으로 탄생하는 플랫폼을 지원할 것”이라고 확약한 것으로 알려졌다.
손 회장과 가와베 사장이 라인에 자본 제휴를 제안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고 한다. 몇 년 전에도 손 회장은 네이버 리더들과 만나 그 자리에서 통합 제안을 했었다는 것이다. 라인이 가진 고객 기반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8000만 명의 이용자를 거느린 라인과 5000만 명의 이용자를 둔 야후재팬이 통합하면 이용자가 1억 명이 넘는 거대 인터넷 서비스 플랫폼으로 거듭날 수 있다.
손 회장 측의 제안에 손사레를 쳤던 라인도 이번엔 달랐다. “이대로라면 GAFA에 밀려 일본에 데이터가 남지 않게 될 것”이라는 위기감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네이버는 한국 검색 서비스 시장에서 구글의 장악을 막은 몇 안 되는 기업이지만, 서비스 범위를 확대하고 있는 GAFA의 거센 위협에 긴장, 라인이 연결 대상에서 제외되는 조건을 감수하면서까지 야후재팬과의 통합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현재 양사는 통합 합의를 위한 최종 조율을 진행 중이며, 2020년 안에 통합을 완료할 계획이다. 소프트뱅크와 네이버가 각각 50%씩 출자해 새 회사를 설립, 이 회사에 Z홀딩스 지분 70% 정도를 보유하게 해 모회사로 만드는 계획이 유력하다. 그렇게 되면 사실상 모회사는 소프트뱅크가 된다. 통합 후 Z홀딩스는 가와베가 사장 겸 공동 최고경영자(CEO)가 되고, 이데자와도 공동 CEO를 맡을 전망이다. 이사회는 각각 3명씩 이사를 맡고, 4명은 사외에서 초빙하는 방향으로 조정 중이라고 한다.
‘이해진-손정의’ 동맹의 첫 번째 목표는 GAFA에 맞서 생존하자는 것이다. Z홀딩스는 스마트폰 서비스에서 뒤처졌고, 라인은 성장이 한계점에 도달한 상황. 두 회사가 통합하면 스마트폰 결제와 뉴스 검색 등 다양한 분야에서 우위에 설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두 번째 목표는 해외 진출도 쉽게 하자는 것이다. Z홀딩스의 간판 브랜드인 ‘야후’는 미국 야후와 맺은 라이선스 계약 상, 로고와 브랜드를 일본에서만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통합 회사는 태국과 인도네시아에서 입지를 굳힌 ‘LINE’ 브랜드로 전개할 수 있다.
무엇보다 양사의 통합은 투자 비용 부담을 덜 수 있다. 사실, 두 회사가 통합하더라도 GAFA의 연구개발비를 따라가기엔 여전히 역부족이다. 독일 시장조사업체 스타티스타에 따르면 2018년 GAFA 4개사의 연구개발비는 총 580억 달러(약 67조 원)였다. 이를 회사는 광고 사업과 전자상거래를 통해 얻은 방대한 데이터를 활용해 첨단 기술과 서비스 혁신을 거듭하고 있다. 반면 Z홀딩스와 라인의 연구개발비는 200억 엔(약 2146억 원)으로 GAFA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다만, 이 거대 GAFA에 대항하기 위한 소프트뱅크그룹 ‘비전펀드’의 조력이 기대된다. 손 회장은 10조 엔 규모의 비전펀드를 통해 인공지능(AI) 등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있다.
신문은 경쟁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플랫폼의 탄생은 유효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GAFA에 대항할 수 있을 정도인지는 미지수라는 입장이다. Z홀딩스와 라인 측이 일본 당국자들을 만나 통합 설명을 한 것으로 보이는데, 개인정보 문제를 놓고 우려의 소리도 있다고 알려졌다. 여기에는 관계가 악화하고 있는 한·일 기업이 동맹을 맺었다는 점에 대한 부담도 있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