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후의 경제]는 세상에 존재하는 건강한 덕후들을 통해 해당 산업을 조망하는 코너입니다. 덕질이 우리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고, 더불어 ‘덕후’의 삶도 전하겠습니다. 주위에 소개하고 싶은 덕후가 있다면 언제든지 제보해주시기 바랍니다.
머나먼 옛날, 태초에 '미니언'들이 있었다. 미니언은 인류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지구 상에 존재했다. 미니언들의 목적은 모두 같다. 세계 최고의 악당, '슈퍼배드'를 주인으로 섬기는 것이다. '슈퍼배드'만 찾아다녔던 미니언들은 육지로 올라온 물고기, 티라노사우루스, 원시인, 파라오, 뱀파이어, 나폴레옹 등을 섬겼지만, 그들이 오래도록 이들을 섬기기는 쉽지 않았다. 항상 이들의 깜찍한(?) 실수로 어떤 문제에 부딪혔기 때문.
'슈퍼배드' 시리즈 속 미니언들은 정체불명의 외계어를 구사하고 몸개그를 하는 '감초' 역할을 해 주인공보다 더 큰 인기를 얻었다. 이 때문에 미니언을 주인공으로 한 스핀오프 작품 '미니언즈'가 만들어졌고, 엄청난 흥행실적을 거뒀다
악당 캐릭터가 이만큼 사랑받은 일이 있을까? 애니메이션 '슈퍼배드'의 악당 캐릭터인 미니언즈는 악당이라기엔 귀여운 모습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이번 '덕후의 경제'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을 받은 악당 '미니언즈'를 사랑한 안정윤(26) 씨를 만났다.
◇5~6년간 굿즈 수천 개 수집 "구매도 계획적으로 했죠"
"사실 '슈퍼배드2'를 처음 봤을 때는 미니언즈에 대한 애정이 크게 없었어요. 갑자기 생긴 애정은 '슈퍼배드2'를 보고 난 이후에 어머니가 캐릭터 박람회를 가셨다가 사다 준 미니언 인형 때문이었죠."
안 씨는 2013년부터 미니언즈 굿즈 수집에 빠졌다. '슈퍼배드2' 애니메이션을 볼 때만 해도 몰랐던 미니언즈의 매력을 어머니가 사준 인형을 만나면서 알게 됐다. 한눈에 봐도 귀여운 모습, 게다가 안 씨가 가장 좋아하는 노란색까지. 안 씨는 미니언즈 인형이 품에 들어왔을 때 그야말로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이때부터가 시작이었다. 안 씨는 미니언즈 피규어, 가방, 신발, 옷, 가전제품, 생활용품까지 가리지 않고 수집하기 시작했다.
안 씨는 처음엔 국내에서 장난감이 많은 홍대에서 발품을 팔아 미니언즈 굿즈를 찾았다. 이곳에서 구하지 못한 제품은 국제전자센터(국전) 한우리를 찾아갔다. 애초 한우리는 게임전문 쇼핑몰이지만, 피규어도 입점해 있어 미니언즈 피규어를 이곳에서 주로 구매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홍대나 한우리에서 판매되는 굿즈로는 안 씨의 마음을 채울 수 없었다.
결국 미니언즈 덕분에 '해외직구'도 시작했다. 비록 영어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지만, 번역기도 사용하고 블로그에 올라온 대로 따라서 하다 보니 해외직구도 점차 손에 익었다.
"뭐든지 첫 경험이 중요한 것 같아요. 미니언즈 굿즈 정품은 유니버설스튜디오에서 유통하는데 국내에 정식 수입해 들어오는 제품은 제한적이라서 해외직구로 구매하기 시작했죠. 한 번 해외직구로 거래를 해보니 두 번, 세 번도 할 수 있겠더라고요. 만일 처음 해외직구를 하는 분이 있다면 저렴하고 가벼운 물품으로 시작해보세요. 자칫 문제가 생기더라도 큰 손해를 보지 않을 테니깐요."
해외직구로도 충족되지 않은 부분은 굿즈 제작을 의뢰하기도 했다. 생활 한복에 미니언즈 캐릭터를 입힌 세상에 단 한 벌뿐인 의상을 제작해 입었다. 이렇게 세상에 단 한 벌뿐인 의상을 입고 미니언즈 관련 행사를 참석하면 단연 주목받았다. 의상 제작비는 30만~40만 원에 달했지만, 안 씨에게는 그만큼의 값어치를 했다.
이렇게 점차 구매량을 늘리다 보니 현재 안 씨가 모은 미니언즈 굿즈만 수천 개. "얼마어치나 샀느냐"라는 기자의 질문에 "3000만 원은 넘을 것 같다"라는 안 씨의 대답이 돌아왔다.
안 씨의 덕질에는 가족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한몫했다. 어머니는 '미니언즈 덕질'을 응원했고, 일 때문에 굿즈를 사러 가지 못하면 대신 사다 준다든지, 선물도 해줬다. 물론 덕질에 있어서 부담스럽지 않은 수준에서 꾸준히 구매했다. 안 씨는 대학교 2학년 때부터 연구실 소속으로 일하면서 고정적인 수입이 있었던 점도 덕질에 도움이 됐다.
"6년가량 연구실 소속으로 일하면서 정기적인 수입이 들어오는 것을 집안에서 덕질을 하는데 쓸 수 있도록 용인해줬어요. 주변에서 특별한 날이나 해외여행을 다녀오면 '미니언즈 굿즈'를 선물해 주는 경우도 많죠. 그렇다고 돈을 막 쓰는 건 아니에요. 체크카드만 쓰고 있는데 수입에서 덕질하는 부분은 소비 패턴을 계획적으로 가져가고 있죠."
◇"덕질이 돈 많은 사람의 취미라고요?"
"덕질이 돈이 많아야 가질 수 있는 취미생활이라고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대단히 잘못된 오해에요."
안 씨는 덕후들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덕질에 대한 편견을 깨고 싶다고 했다. 일부 사람들이 덕질을 하려면 경제적으로 지출되는 부분이 많아서 마이너스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저만 해도 '미니언즈 덕질'을 통해 영어도 늘고, 이렇게 인터뷰하는 기회까지 얻었잖아요. 살면서 이렇게 인터뷰할 기회가 얼마나 있겠어요. 그리고 덕질도 계획적으로 수입의 일정 부분만 지출하다 보니 큰 부담도 없답니다. 저처럼 덕질하는 사람들에 대한 오해는 없었으면 좋겠어요."
안 씨는 이렇게 '미니언즈 덕질' 이라는 취미생활을 하면서도 홀로 행복해지고 싶지 않았다. 미니언즈에 관심 있어 하는 다른 사람들과도 함께 행복을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였다.
안 씨는 2016년 말 블로그를 통해 미니언즈에 대한 정보를 나누기 시작했다. 국내에서 미니언즈 굿즈를 구매하는데 제한적이었던 경험을 빌려, 해외의 미니언즈 굿즈에 대한 정보도 소개하고 본인이 다녀온 미니언즈 관련 행사들도 이야기했다.
하지만 긴 글을 적는 데 적합한 블로그의 특성 때문에 2017년부터는 인스타그램을 병행하는 것으로 방향을 틀었다. 인스타그램에서는 미니언즈와 관련한 어떤 정보를 얻었을 때 바로바로 전달하고, 블로그는 후기를 작성하는 등의 용도로 사용했다.
때로는 팔로워들과 인스타그램 라이브를 통해 실시간으로 쌍방향 소통했고, 점차 외국인들과의 정보 공유도 이때부터 이뤄졌다.
"제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게시물을 보고 외국인들이 미니언즈 관련 국내 행사에 대해 질문을 하기도 하고 이렇게 소통하면서 외국인 친구들도 많이 생겼어요. 지금은 외국인 친구들을 통해 현지에서 판매되는 미니언즈 굿즈를 구매하기도 해요. 중국, 방콕, 태국, 인도네시아 등 각 현지에 있는 외국인 친구들에게 부탁하면 해외직구보다도 더 저렴하게 미니언즈 굿즈를 구매할 수 있더라고요. 이처럼 SNS를 통해 미니언즈에 관심 있어 하는 주변 사람들과 정보를 공유하면서 더 많은 사람이 행복할 수 있고, 다양한 친구들을 사귈 수도 있어서 뜻깊은 것 같아요."
◇덕후가 덕후를 만났을 때
덕후가 덕후를 만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덕후는 덕후를 알아본다고 했던가. 안 씨는 유명한 덕후를 만나 인증샷을 찍었다. 바로 '도라에몽 덕후'로 이름난 심형탁이 그 주인공이었다.
안 씨가 심형탁을 만난 것은 2017년 6월 인천국제공항에서 열린 '미니언즈 내한 행사' 당시였다. 당시 행사를 심형탁과 개그맨 김영철이 사회를 봤고, 안 씨도 행사에 참여하고자 미니언즈 굿즈로 한껏 무장하고 갔다.
"미니언즈 의상을 본뜬 옷을 입고 행사장에 갔더니 심형탁, 김영철 씨가 사진을 찍을 기회를 주더라고요. 덕후로 유명한 심형탁 씨와 사진을 찍을 때 참 뜻깊었어요. 다만 대화를 많이 나누지 못해본 것이 아쉬움이 남네요."
안 씨는 향후 미니언즈와 관련한 의미 있는 일도 해보고 싶다고 했다.
"당장에는 아니지만, 기회만 된다면 '미니언즈' 관련 영화 홍보나 굿즈를 제작하는 회사에서 이들을 소개하는 일을 해보고 싶어요. 또 외국인들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매월 어디를 방문하면 미니언즈 관련 굿즈나 행사 등을 손쉽게 접할 수 있는지 '월간 미니언즈 가이드'를 만들어서 배포하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