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 속으로] 바이오산업의 두 도시 이야기

입력 2019-11-27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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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세기이자 의심의 세기였으며 빛의 계절이자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면서 곧 절망의 겨울이었다.”

소설 ‘두 도시 이야기’는 대조되는 파리와 런던의 두 도시를 통해 프랑스 혁명기를 그린 소설이다. 이 소설의 첫 문장은 어쩌면 지금 현실에서도 통용된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국내 바이오산업은 최고의 시기이면서도 최악의 시기이며 지혜와 어리석음이 혼돈하는 시기를 지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소설을 이해하기 위해 프랑스 혁명을 알아야 하는 것처럼 바이오산업을 이해하려면 발전사를 알아야 한다. 바이오테크놀로지는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르게 과학계와 의료계에서 혁명을 일으켰다. 바이오테크놀로지는 50년 전에는 개발할 수 없었던 새로운 치료법과 백신을 만들었으며 분자 레벨에서 다양한 진단법으로 수백 가지가 넘는 질병을 테스트할 수 있다. 이는 1976년 인간의 단백질을 원하는 대로 만들 수 있는 Engineer Bacteria의 발견에서 시작해 인간 인슐린, 성장호르몬, Factor VIII 등 바이오테크놀로지 기술로 최초의 제품이 탄생했다.

바이오테크 산업은 43년의 역사를 가진 갓 태어난 산업으로 역동적으로 발전했다. 2000년의 역사를 가진 금융업, 증기기관의 발명을 통해 발전해온 250년의 자동차산업, 150년의 역사를 가진 석유산업과 비교했을 때 바이오테크 산업은 아직 신생아 단계다. 하지만 반세기도 되지 않은 역사를 지닌 이 산업이 과학계와 의료계에는 획기적인 발전을 이뤄냈고 인류 건강에 큰 영향을 줬다.

1980년대 바이오테크 산업이 태동하면서 미국에서는 제넨텍, 암젠 등의 다수의 기업이 설립되어 본격적인 바이오의약품 개발을 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기업인 제넨텍은 UC 샌프란시스코 대학 교수였던 허버트 보이어 교수와 벤처캐피탈리스트인 로버트 스완슨에 의해 1976년 설립됐다. 그 당시 최신 이론인 DNA 재조합 이론에 대해 개념증명 과정이 필요해 우선 14개의 작은 아미노산으로 구성된 소마토스타틴이라는 단백질을 대장균에서 생산하는 것을 시작으로 191개의 아미노산으로 이뤄진 인간 인슐린을 생산하는 데도 성공한다. 성공한 지 4일이 지난 1978년 8월 25일, 미국의 제약사 일라이 릴리사와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한다.

일라이 릴리는 선수금으로 50만 달러를 제공하고 제품화에 성공할 경우 제넨텍에 판매액의 6%를 내기로 기술이전 합의를 한다. 이는 최초의 재조합 DNA기술이 사용되어 상업화에 성공한 최초의 바이오의약품인 휴뮬린으로 1982년 10월 미국 FDA로부터 판매승인을 받게 된다. 제넨텍은 라이선스 아웃으로 자본을 축적했고 이를 통해 인간화된 항체를 이용한 항암제 개발을 시작한다. 또 허셉틴, 아바스틴, 리툭산 등을 개발해 세계적인 항암제 전문 바이오 기업으로 발돋움한다. 이와 같은 제넨텍의 사업모델은 대부분의 바이오테크 기업에서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실험실에서 시작해 신약개발을 하고, 대형 제약사에 신약의 판매권을 팔아 자본을 축적하는 이 과정은 바이오테크 기업의 성장 방정식을 만들었다.

국내 바이오산업은 1992년 국내 최초의 바이오 벤처인 한국생공(현재 바이오니아) 설립을 시작으로 1990년대 중반까지 매년 20~30개의 바이오 벤처기업이 설립되다가 2000년에는 전 세계적인 닷컴 버블의 영향으로 200개가 넘는 기업이 시장에 진입했다. 이후 바이오산업은 황우석 사태, 코스닥의 기술성 평가 상장제도 도입, 그리고 우회상장 등 여러 부침을 겪으면서 성장하였다.

2000년대에는 새로운 바이오 기술의 사업화라는 가능성의 영역에 머물렀다면 2010년도부터는 원천기술확보를 통해 오픈이노베이션을 활발히 진행하는 형태로 발전했다. 2015년 국내 제약사는 해외 대형 제약사에 라이선스 아웃을 체결했다. 이를 시작으로 2018년 한 해에만 11건의 기술수출 계약과 5조2642억 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 1999년부터 2014년까지 21개 국내 신약이 개발됐고 2015년에서 2018년까지 9개의 국산 신약이 개발되었다. 2013년 이후 국내 개발된 의약품 중 10여 개의 제품이 미국과 유럽의 허가기관에 인허가를 획득해 선진국 시장에서 판매를 본격화했다.

하지만 화려한 성공 뒤에는 실패도 따르는 법이다. 2019년부터 국내 한 제약사의 기술이전 반환을 시작으로 국내 최초의 세포치료제가 뒤늦게 셀라인 문제로 품목 취소가 되는 나쁜 소식을 전했다. 최근에는 글로벌 임상3상을 진행하고 있는 신약의 임상 중단 및 임상 실패 뉴스가 연이어 터지고 있다.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했던 바이오테크 대표기업들은 파이프라인 타겟은 모두 다르다. 하지만 공통점은 자체적으로 임상 3상을 진행하고 있고, 관련 결과도 발표했으며, 통계적 유의성은 없었다는 점이다.

물론 기업들은 이를 수습하고자 Pre-NDA 미팅 또는 2차 지표를 통해 허가 가능성을 부각하고 있다. 하지만 이 때문에 현재 바이오기업들의 주가는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하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한국의 바이오테크 산업은 산업 자체보다 주가 상승이라는 투기적 의도를 지닌 이들에 의해 왜곡이 심화하고 있다.

신약개발을 다룬 책, ‘Drug Hunters’에서 도널드 R. 커시는 흥미로운 비유를 한다. “영화제작으로 성공하고 싶다면 용감하고 낙관적이며, 자신이 참여했던 망한 영화를 잊을 수 있도록 기억력이 형편없어야 한다. 내가 만나본 신약 사냥꾼은 거의 모두 용감하고 낙관적이었다.” 협심증을 치료하기 위해 개발된 실데나필이 비아그라로 출시된 후 성생활 혁명을 가져왔고, 플레밍은 우연히 날아든 푸른곰팡이에서 페니실린을 만들어 냈다. 바이오산업은 이성과 논리만의 세계는 아니다.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 탐욕이 바로 바이오산업의 엔진을 가동하는 연료일 수도 있다.

다시 한번 한국의 바이오가 최고의 시기이자 최악의 시기임을 상기해야 한다. 앞으로 나아가야만 생존할 수 있다. 집중할 수 있는 부분은 집중하고 외부의 도움이 필요한 부분은 외부에서 자원을 조달하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신약 포트폴리오가 글로벌 트렌드에 부합하여야 한다. 신약과 신물질을 향한 글로벌 시장에서 미충족 수요를 파악하는 능력을 갖추고, 필요하다면 라이선스 인과 아웃을 적절히 활용해야 한다.

활발한 해외 M&A를 통해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나아가 국내 바이오기업들도 해외 다국적 기업들처럼 ‘빠른 성공 아니면 빠른 실패(Quick Win, Fast Fail)’ 전략을 사용해야 한다. 실패확률이 높은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를 중단하고 성공 가능성이 높은 프로젝트에 자원과 인력을 집중하자는 의미다. 선택과 집중으로 효율성을 높여야만 바이오산업은 도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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