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안처리 '역대 최저치' 오명…'2회 소위'는 커녕 예정 일정도 파행
위원 중 한명만 반대해도 '없던 일로'…탄력근로‧데이터 3법‧유치원 3법 등 뒷전
"정쟁 그만두고 민생법 우선 통과를"
23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대 국회에 제출된 법안은 총 2만3574건에 달한다. 지난 19대 국회 전체의 1만7822건보다 5752건 많았지만, 이 중 20대 국회에서 처리된 법안 수는 7211건으로 처리율은 30.6%에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19대 국회의 36.8%, 18대 43.6%, 17대 50% 등에 현저히 못 미치는 수치다.
발의된 법안이 법률에 반영된 비율(수정·대안 반영 포함)은 역대 최저치란 불명예를 얻을 전망이다. 이번 국회에서 지금까지 실제 법률에 반영된 법안은 5674건으로 전체 법안의 27.59%다. 현재 추세가 이어진다면 회기가 끝나는 시점에 19대 국회의 법안반영비율인 41.68%를 넘기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앞서 16대 국회에서 62.98%였던 법안반영비율은 17대 국회 50.38%, 18대 국회 44.4% 등으로 회기가 거듭될수록 낮아지는 추세다.
국회가 회기를 마칠 때마다 반복되는 무더기 법안 폐기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현재 계류 중인 미처리 법안은 1만6363건이다. 국회가 문을 연 이후 3년간 처리한 법안이 7211건이어서 2배가량의 미처리 법안이 산적해 있는 셈이다. 회기가 끝날 때까지 처리되지 않은 법안은 자동으로 폐기된다. 앞으로 제출될 법안까지 고려하면 20대 국회의 자동폐기 법안은 1만 건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19대 국회는 9809건이었다.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한 법안도 점점 늘어간다. 7개 상임위 계류법안을 살펴보면 △행정안전위원회 2534건 △법제사법위원회 1661건 △환경노동위원회 1354건 △보건복지위원회 1479건 △국토교통위원회 1320건 △기획재정위원회 1312건 △정무위원회 1234건 등이다. 회기를 거듭할수록 법안 발의는 많아지는 반면, 이를 소화할 국회의 단계별 기능은 갈수록 후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7월부터 시행된 ‘일하는 국회법’은 상임위별로 법안소위를 월 2회씩 의무적으로 열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그러나 여야 대립이 장기화한 탓에 ‘2회 소위’는 물론, 예정된 소위조차 파행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법안소위의 ‘만장일치 찬성’ 관례도 법안처리율을 낮추는 원인으로 꼽힌다. 단 1명만 반대해도 법안은 ‘계류’ 딱지가 달리는 까닭이다.
현행 국회법은 재적 위원 5분의 1 이상 출석으로 법안소위를 열 수 있고 재적 위원 과반수 출석과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한다고 정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위원 1명이라도 반대할 경우 해당 법안을 의결하지 않는 게 관행으로 여겨졌다. 이 때문에 이번 20대 국회에서도 데이터3법 중 하나인 신용정보보호법이 정무위원회 법안소위에서 지상욱 바른미래당 의원 한 사람 반대로 난항을 겪는 등 만장일치 관행으로 인한 부작용도 겪었다.
국회법에서 상임위 법안소위 의결 방식은 위원회에 관한 규정을 따르며, 이러한 다수결의 원칙을 소위에도 적용하는 게 타당하다는 게 국회 입법조사처의 의견이다.
이같이 20대 국회가 민생법안을 쌓아둔 채 ‘식물국회’를 되풀이하는 이유는 내년 4월 총선 밥그릇 싸움에 몰두하고 있기 때문이다. 11일 문을 연 임시국회가 개점휴업 상태에 있다가 23일 첫 본회의를 열었다. 하지만 여야 ‘4+1’(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 협의체는 선거법 개정안과 검찰개혁 법안에 우선순위를 두면서 연내 시급히 처리해야 할 법안으로 꼽혔던 탄력 근로 부수법안, 데이터 3법, 유치원 3법 등 경제·민생 법안을 뒷전으로 밀어 해를 넘길 가능성이 커졌다. 이를 두고 패스트트랙 법안들을 미뤄놓고 예산부수법안과 240여 개의 민생법안부터 먼저 통과시키는 것이 국회의 최소한의 도리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