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ㆍ석회ㆍ육계…돼지열병 테마주 열풍=종목별 변동성이 가장 컸던 테마는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다. 국내에서도 ASF가 본격적으로 퍼지기 시작한 9월 이후 관련 종목들의 주가는 급속도로 출렁였다. 진행 상황에 따라 다양한 업종의 기업이 테마주로 묶였다는 것이 특이점이다.
한 해 동안 주가가 230% 넘게 뛰며 올해 두 번째로 많이 오른 코스피 상장사로 꼽힌 체시스가 돼지열병 테마주 수혜를 톡톡히 본 대표적인 기업이다. 국내에서 돼지열병이 처음으로 확진 판정된 9월 17일과 18일, 20일 연달아 상한가를 기록했다. 체시스는 애초 자동차 부품사업을 영위해왔지만, 계열사 넬바이오텍이 과거 돼지 콜레라 백신과 관련한 국책과제를 수행한 적이 있다는 점 때문에 테마주에 포함됐다. 동물 백신 전문업체 우진비앤지는 9월에 52%, 이글벳도 20% 넘게 오르며 뒤를 이었다.
ASF 방역에 생석회가 효과적이라는 소식이 알려지며 관련 기업들도 주가가 뛰었다. 백광소재(43.6%), 한일현대시멘트(12.3%) 등이 대표적이다.
여러 지역에서 확진 소식이 연달아 나오자 대체수요 기대감에 시장의 관심은 닭고기, 오리고기 관련 기업들로도 옮겨붙었다. 닭고기 가공업체인 마니커에프앤지는 9월에 162% 넘게 뛰었다. 8월 중순 상대적으로 낮은 공모가인 4000원에 신규상장했지만 상장한 직후 테마주로 묶여 상장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주가가 1만 원대를 넘겼다. 하림(31.6%), 정다운(17.2%)도 뒤를 이었다.
◇‘애국’에서 ‘총선‘까지…테마에 들썩인 하반기=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에 따른 애국 테마주 역시 하반기 증시를 뒤흔든 키워드다. 일본산 제품의 점유율이 높은 업종들이 알려지면서 해당 업종 내 국내기업들의 반사이익이 점쳐졌다.
대표적으로 국산 필기구업체 모나미는 일본과의 갈등이 본격화한 7월 내 2590원에서 5760원으로 뛰면서 122% 올랐다. 4조 원에 이르는 국내 필기류 시장에서 일본 업체가 70% 이상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 영향을 미쳤다. 같은 기간 일본 유니클로 불매 운동이 확산하면서 주목받은 신성통상은 25.6%, 일본 맥주 불매운동 수혜주로 꼽힌 하이트진로홀딩스도 18.33% 올랐다.
한편 내년 총선이 가까워지며 연말 들어 정치인 테마주도 주목받고 있다. 특정 정치인과 회사 내부자의 학연ㆍ지연 등을 이유로 테마주가 형성된 양상이다.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총선 출마 기대감에 소위 ‘이낙연 테마주’로 불리는 남선알미늄, 티케이케미칼, 남화산업, 주연테크, 서원 등은 최근 주가가 크게 올랐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대표적인 테마주로 분류되는 진양폴리는 지난주에만 주가가 30% 가까이 올랐고, 박원순 서울시장 테마주로 꼽히는 성안도 19일 상한가를 기록했다.
◇테마주 그 이후는…실적 따라 희비=다만 연말로 접어들며 테마주로 묶였던 기업들의 주가 향방은 완전히 갈렸다. 실적이 뒷받침된 기업들은 테마주를 계기로 상승 곡선을 이어갔지만, 일부 종목은 거품이 빠지며 이전 수준보다 더 낮게 떨어진 예도 있었다.
일례로 모나미는 애국테마주 상승세가 잦아든 9월 말부터 내림세를 탔다. 이달 25일 최고점인 5070원대를 찍었지만, 올해 말에는 3670원으로 마감하면서 고점 대비 28% 가까이 내렸다. 3분기 기준 5억600만 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하는 등 실적 부진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7월과 8월 연이어 15억 원, 21억 원가량의 자사주를 처분한 것도 부담 요인이었다.
반면 하이트진로홀딩스의 경우 3분기 영업이익이 518억 원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59% 증가했다. 신제품 ‘테라’가 일본 맥주 불매 운동의 수혜를 보며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결과다. 주가도 실적에 힘입어 테마주 장세가 접어든 9월 말 1만1200원에서 1만3100원으로 16.7% 뛰며 올해를 마무리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테마 장세에선 실적, 펀더멘탈 등을 고려하지 않은 기대감이 주가에 더 큰 영향을 미쳤지만, 그 이후에는 실적에 따라 주가가 균형을 맞춰가는 모습을 보였다”라며 “내년 4월 총선 전까진 갈 곳 잃은 자금들이 정치 테마주로 몰릴 가능성이 크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