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인들 "전통시장, 도와달라는 말 대신 경쟁력 갖추어야"
"정량이 400g인데 조금 더 드릴게요. 어머님은 우리 단골이시니까."
무게를 재던 상인이 굴 한 주먹을 비닐봉지에 더 담았다. 멀뚱히 지켜보던 손님의 얼굴에는 기분 좋은 주름이 생겼다. 사고파는 사람, 이를 지켜보던 다른 사람의 입꼬리도 슬며시 올라갔다.
20일 서울 동작구에 위치한 남성시장은 설 연휴를 앞두고 사람들이 거리를 가득 메웠다. 차례상을 차리기 위해, 가족들을 먹일 음식을 준비하기 위해 사람들은 분주하게 눈과 손을 이곳저곳 움직였다. 대형마트에 밀려 전통시장의 위기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활기찬 모습이었다.
전통시장이 대형마트에 비해 접근성이나 편리성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도 전통시장을 찾는 이유는 '가격' 때문이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가 전통시장 50곳, 대형마트 25곳을 대상으로 설 차례상 차림 비용을 조사한 결과, 6~7인 가족 기준 구매 비용은 전통시장이 평균 18만7718원, 대형마트는 평균 22만559원으로 전통시장이 15% 더 저렴했다.
이날 남성시장에서 만난 주부 최자선(62) 씨는 "옛날에 비하면 가족이 줄어 차례상 규모도 작아졌고, 해 먹는 음식량도 줄었다"며 "사야 할 재료도 적어지다보니 마트보다는 전통시장을 찾는다"고 말했다. 양이 적다면 전통시장이 더 저렴하게 필요한 것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전통시장을 찾는 사람들의 특성도 무시할 수 없다. 대개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연령층은 50~70대. 다른 연령층에 비해 현금 사용 비율이 높고, 전통시장은 대형마트보다 현금을 주고받는 일이 잦다. 게다가, 전통시장은 지금도 현금을 낼 경우 1000원, 2000원을 깎아주는 관습이 남아있다. 중장년층이 전통시장을 찾는 이유 중 하나다.
아내와 함께 장을 보러온 이현구(55) 씨는 "카드 가격과 현금 가격이 다르면 안 되지만, 물건값을 깎아주는 것을 예전부터 '정'이라고 말하지 않았느냐"면서 "더 싼 가격에 에누리까지 받았으니, 오늘 장보기는 성공"이라고 밝게 웃었다. 그는 이어 "전통시장은 지역 주민들이 많이 찾다 보니 상인과 면을 트고 친해지기도 한다. 대형마트보다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라고 덧붙였다.
물론 불편한 점도 있다. 매대와 매대 사이에 난 길로 오토바이가 물건을 구경하는 손님들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지나가고, 자동차가 뿜어내는 매연이 눈살을 찌푸리게 할 때도 있다. 쓰레기 버릴 곳이 마땅치 않고, 이따금 길거리에 버려진 쓰레기가 발이 치이기도 한다. 그러나 상인들도 변화하는 현실에 발맞추기 위해 힘쓰고 있었다.
약 10년째 이곳에서 장사했다는 상인 김모 씨는 "대형마트에 비해 부족한 점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점점 좋아지고 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상인들 사이에서도 위기감이 맴도니 전에 손사래 쳤던 카드 결제도 이젠 사라졌고, 청결에도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상인은 손님이 늘었다고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제 경쟁 상대는 오프라인 대형마트가 아니라 온라인 쇼핑몰이라는 것. 지난해 이마트는 2분기에 창사 이래 최초로 분기 적자를 기록했고, 롯데마트 3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61.5% 감소했다. 오프라인에서의 매출이 온라인으로 빠졌기 때문이다.
이 상인은 "대형마트는 오프라인에서 4만~5만 원어치만 사도 집으로 배달을 해준다. 그리고 젊은 층은 인터넷으로 집 앞까지 배송해서 장을 보는 시대인데 명절에 사람 많다고 안심해서는 안 될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전통시장도 '찾아와달라', '도와달라'라고 호소하기보다는 이제는 오고 싶은 장소로 만들어야 하지 않겠냐"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