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개혁당 7일 창당 발기인 대회 개최…“축적된 분노가 창당 동력”
“22년을 속았다. 대통령 소속 규제개혁위원회가 1998년 만들어지고 22년이 지났다는 의미다. 정부마다 ‘규제개혁’을 외치지만, 시늉만 하고 끝난다.”
고경곤(56) 한국인터넷전문가협회장은 벤처 업계가 ‘규제개혁으로 좋은나라 만드는 당(가칭ㆍ규제개혁당)’ 창당에 나선 이유를 이렇게 요약했다. 지난달 29일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만난 고 회장은 질문 하나도 허투루 넘기는 법이 없었다. 벤처기업인들이 정치에 발을 들이게 된 배경을 꼼꼼히 설명했고, 본인들의 의도가 곡해되지 않도록 부연을 거듭했다.
고 회장은 1991년 한국 코카콜라에 입사해 2004년까지 재직했고, 이후 2004~2007년 코카콜라 차이나에서 디지털 본부장을 역임했다. 그 뒤 LG전자에서 중국총괄 마케팅 팀장, KT에서 인터넷전략 본부장,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에서 아시아태평양 마케팅 부사장으로 근무했다. 2017년 기업을 나온 그는 지난해 6월 제4대 한국인터넷전문가협회장으로 취임했다.
산업계에서 화려한 이력을 쌓은 고 회장이 창당이라는 적극적인 방법으로 정치에 참여하게 된 이유에 관해 그는 ‘축적된 분노의 에너지’라고 답했다.
대통령 소속 규제개혁위원회가 만들어진 지 22년이 흘렀지만, 그사이 사라진 규제보다 생겨난 규제가 더 많다는 주장이다.
고 회장은 “사실상 모든 대통령이 취임하고선 규제 개혁을 하겠다고 이야기한다”며 “그러나 대통령이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기울이는 노력에 힘을 실어 줘야 한다”며 “그것은 바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가능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고 회장은 직접적인 창당 배경으로는 두 가지 일을 꼽았다.
하나는 지난해 내내 뜨거웠던 ‘타다 갈등’이고, 또 다른 요인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다.
지난해 말 국회에서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통과하면서 비례대표 의석 중 30석까지 연동률 50%를 적용하도록 규정했다. 사상 처음 도입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정당 지지율에 비례해 전체 의석수를 할당한다. 연동비율이 50%로 적어 ‘준(準)’이라는 접두어를 붙였는데, 시행 시 지역에서 지지세가 약해도 전국적인 정당 지지율이 높으면 의석을 얻을 수 있다. 비례대표를 배정받는 최소 정당 득표율 3% 이상이면 최소 4석(300석×지지율 3%×연동률 50%)을 확보하게 된다.
고 회장이 밝힌 목표는 일단 1명 이상의 비례대표 의원을 배출하는 것이다.
그는 “어떤 분들은 중도에 속하는 14%에서 10%만 가져오자고 한다”며 “개인적으로는 의원 배출도 중요하지만, 기존 정당을 놀라게 하는 효과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기존 정당이 규제개혁당의 영향력을 실감해 ‘규제 개혁’의 기치를 들고나오길 기대한다는 의미다.
고 회장은 최근 정치권을 향해 분노한 일화도 털어놨다. ‘데이터 3법(개인정보법ㆍ신용정보법ㆍ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통과에 정치권이 자축하는 모습을 보면서다. 그는 지난달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 관람 차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귀국한 날 데이터3법 통과를 자축하는 정치인의 플래카드를 봤다고 말했다.
고 회장은 “10년 전에 해야 했일을 지금에서야 한 것”이라며 “10년 전에 풀어줬으면 우리 기업이 지금보다 훨씬 앞서갔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디지털 헬스 분야 규제 같은 것도 5년, 10년 싸우면 풀어준 뒤에 자축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규제개혁당은 4일 오후 창당 발기인 대회를 열었다. 신종 코로나 감염 우려로 오프라인 다중집회에는 최소 인원만을 참석케 하고, 페이스북과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 등에서 온라인 생중계를 했다.
고 회장은 100명의 공천 후보를 온라인으로 공개 모집한 뒤 각자 정책 발표 이후 10명으로 추릴 방침이라고 말했다.
고 회장은 얼마 전 창단 선포식을 한 ‘생활진보플랫폼 시대전환’과 같은 신당과 연대 가능성도 내비쳤다. 시대전환은 3040세대 주도의 실용 정당을 지향하며 ‘기본소득 도입’을 주요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는 “젊은이들과 연대해야 우리가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며 “기업에 몸담은 젊은 분, 창업자, 정치 지망생들에게 러브콜하며 인재 영입도 열심히 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한편, 규제개혁당이 지난달 30일 개설한 페이스북의 규제개혁당 그룹에는 3일 만에 1000명의 기업인, 변호사, 교수, 청년들이 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