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의 경제학'은 과거에 유행했던 제품을 조망한 코너입니다. 경제, 산업적인 의미는 물론, 지금 보면 재미있는 요소까지 꼼꼼하게 소개하겠습니다.
바퀴는 사람들의 이동을 돕는 도구다. 요새는 전동킥보드가 일상의 이동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지만, 예전에는 '힐리스'라는 신발이 인기를 끌었다. 바퀴 이야기를 하다 갑자기(?) 신발이 나와 혼란스러울 수도 있지만, 이 상품은 바로 '바퀴가 달린 신발'이다.
힐리스는 발뒤꿈치 쪽에 바퀴가 달려있다. 바퀴가 있어서 '힐(wheel)리스 아닐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신발을 제작한 업체의 브랜드가 '힐리스(Heelys)'다. 회사 이름이 상품명이 된 셈이다.
◇미국에서 '대박'친 힐리스…한국에서도 인기 끌어
미국 업체인 힐리스는 당시 대박을 쳤다. 2006년 이 업체는 기업공개(IPO)를 앞두고 약 1억3500만 달러의 자금이 몰렸다. 힐리스는 전체 지분의 24%를 차지하는 642만5000주를 공모에 붙였고, 공모가는 주당 21달러로 책정됐다. 당시 기업가치는 약 5억6700만 달러로 집계됐다. 청소년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아지자 회사 가치도 높게 평가된 것이다.
힐리스는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2003년 가수 세븐(SE7EN)이 이 신발을 신고 1집 활동을 시작한 게 유행의 시작이었다. 그가 뮤직비디오, 무대 등에서 타는 장면은 지금도 회자할 정도. 세븐은 이후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힐리스를 처음 신은 건 등하굣길 통학 신발이었고, 데뷔를 준비하던 중 무대에서 신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뒷이야기를 공개했다.
이후 힐리스는 폭발적으로 팔렸다. 초등학생과 중학생들이 이를 신고 학교에서 시합까지 벌였다. 선생님들이 학교에서는 실내화 외에 다른 것은 신지 말라고 지도했을 만큼, 힐리스는 청소년들 사이에서 새로운 이동수단이자 놀이문화로 등극했다.
한국의 관련 기업도 성장했다. 2002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힐리스를 들여온 EM커뮤니케이션은 첫해 32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세계 최초로 직영점을 열었고, 모방 제품이 나올 정도로 브랜드 인기는 승승장구했다. 세븐이 신고 나오면서 화제가 된 2003년에는 매출 100억 원이 거뜬히 넘을 것이라고 업계는 전망했다. 잘 만들고 잘 들여온 신발 하나가 회사의 성장을 이끈 셈이다.
◇사건·사고 발생하면서 식은 인기…주가는 '폭락'
아쉽게도 힐리스는 '롱런'하지 못했다. 큰 인기를 얻었지만, 각종 사건ㆍ사고가 발목을 잡았다.
힐리스를 타다 넘어지거나 자동차에 치이는 크고 작은 사건이 이어졌고, 결정적으로 2003년 전주에서 한 어린이가 힐리스를 타고 놀다가 미끄러져 급류에 휩쓸린 사건이 보도되면서 '위험하다'라는 인식이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 역시 유사한 사고가 발생했다. 뿐만 아니라 제조업체가 청소년층의 취향 변화에 둔감하게 대응하면서 기업 가치가 추락했다. 미국 초고속 성장 중소기업 1위라는 영광까지 얻었지만 2007년에 주가가 50% 폭락한 것도 이 때문이다.
또한, 모방품의 낮은 품질도 결국 힐리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줬다. 이들 모방품은 정품만큼 튼튼한 내구성을 갖추지 못해 바퀴가 금세 깨지는 일이 많았다. 신발 밑창의 마모가 심해 찢어지거나 얇아져 발뒤꿈치에 무리가 간 사람도 있었다.
◇슬리퍼로 만든 '슬리스'…힐리스는 지금도 현재진행형
학교는 물론 밖에서도 타는 것이 마땅치 않자 일부 학생들은 삼선슬리퍼를 개조해 힐리스와 비슷한 '슬리스'를 만들었다. 삼선슬리퍼에 바퀴를 달아 학교에서 타고 다닌 것. 선생님의 눈을 피할 수 있는 데다, 복도에서는 속도감을 느낄 수 있어 이를 직접 만드는 학생이 적지 않았다.
나름대로 획기적인 신발이었던 만큼, 힐리스는 지금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2017년 롯데백화점 포항점에 입고된 힐리스는 3일 만에 4000만 원, 한 달 동안 1억2000만 원의 매출을 올렸다. 과거만큼은 아니지만, 초등학생을 중심으로 여전히 수요가 있는 셈이다.
최근에도 힐리스를 타고 다니는 초등학생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아동용인 210~220mm를 중심으로 인터넷 쇼핑몰에서 구매가 이어지고 있고, 후기도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