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경영자’ ‘중성자탄 잭’ 별명…20년간 GE 성공신화 창출·“회사 운영은 A, 후계자 선정은 F”
2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과 CNBC방송에 따르면 잭 웰치 전 GE CEO는 전날 자택에서 부인과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다. 향년 84세. 부인은 웰치의 사망 원인이 신부전증이라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GE 전 회장이자 CEO이며 전설적인 경영자인 잭 웰치가 사망했다”며 “‘중성자탄 잭’과 같은 기업 리더는 없었다. 그는 나의 친구이자 지지자였다. 우리는 함께 훌륭한 딜(Deal)을 했다. 그는 절대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따뜻한 애도를 그의 훌륭한 부인과 가족에게 보낸다”고 애도했다.
관료주의적인 자기만족을 부숴버리겠다는 단호한 결심으로 잭 웰치는 그의 경영성과를 평가하는 극단적인 두 가지 별명을 얻게 됐다.
미국 경제지 포춘은 1999년 그에게 ‘세기의 경영자(Manager of the century)‘라는 별명을 붙였다. 당시 제프리 콜빈 포춘 편집장은 “잭 웰치는 전격적을 펼치는 것처럼 저돌적으로 행동했지만 수년 뒤에 당시 더 신속하게 움직이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며 “그는 미국의 보물 같은 기업 중 하나를 받아 이것을 깨뜨리는 것을 두려워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웰치는 그것(GE)을 깨뜨리지 않은 것은 물론 잘 변모시켰으며 사람들의 기대를 훨씬 뛰어넘어 그 가치를 배가했다”고 높게 평가했다.
그러나 웰치는 사업 구조조정과 함께 약 10만 명을 해고해 ‘중성자탄 잭(Neutron Jack)’이라는 악명도 얻었다.
WSJ는 웰치가 수익성이 낮은 사업체와 비생산적인 직원을 쳐내는 냉철한 전략으로 성공을 거둬 1980년대 국제적인 유명인사가 됐으며 GE를 1990년대 미국에서 가장 가치 있는 회사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웰치는 보잉과 홈디포 등 다른 대기업 CEO가 된 거물들을 육성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웰치는 1960년 플라스틱 사업부의 화학 엔지니어로 GE에 첫발을 내딛었다. 1972년 부사장이 됐으며 7년 후에는 부회장에 올랐고 1981년 4월 45세 나이로 GE 역사상 최연소 회장에 올라 무려 20년간 회사를 이끌었다.
GE의 뿌리는 100여 년 전의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과 존 피어폰트 모건(JP모건체이스 설립자)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현대적인 GE를 만든 것은 바로 잭 웰치라고 WSJ는 강조했다.
그는 GE 수장으로 있으면서 1등이나 2등이 아니면 도태시킨다는 경영철학으로 무수한 사업을 매각했지만 반대로 다른 기업 인수에도 적극적이어서 회사 영역을 금융서비스와 미디어 등으로 크게 확장했다.
중간급 관리자에게 재량권을 부여해 대기업의 부풀려진 관료주의를 간소화했다. 또 성과가 최하인 직원은 무조건 쳐낸다는 원칙으로 무자비한 인력 삭감을 진행했다. 그의 자서전에 따르면 CEO 취임 첫 5년간 GE 인력은 41만1000명에서 29만9000명으로 줄었다.
이런 경영혁신 결과 GE 시가총액은 웰치가 CEO로 있는 동안 120억 달러에서 4100억 달러로 팽창했다.
그러나 웰치는 2001년 9·11 테러가 일어나기 수일 전에 퇴임하고 나서 지금까지 자신이 구축했던 GE 제국이 몰락하는 것을 지켜봐야만 하는 씁쓸한 신세가 됐다.
GE 순이익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몰락한 GE캐피털의 숨겨진 손해와 전력사업에서의 계속되는 부진으로 수년째 급감했다. 웰치가 뽑았던 후계자인 제프리 이멜트는 2017년 GE 몰락의 주범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면서 퇴장했고 그 뒤에도 GE는 CEO가 잇따라 갈렸다.
말년에 웰치는 자신이 구축했던 GE가 해체되는 것을 괴로운 심정으로 지켜봐야 했다고 WSJ는 전했다. 그의 친구들에 따르면 웰치는 자신의 회사 운영에 대해서는 ‘A’점수를 줬지만 후계자 선정에 대해서는 ‘F’를 부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