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준, 기습적 인하로 통화정책 협조 대신 경쟁 택해…ECB 기업 유동성 지원 준비 등 대응책 마련 부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에 따른 시장의 혼란을 잠재우려던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파격적인 금리 인하 조치가 무위로 돌아가면서 다른 주요국 중앙은행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연준의 긴급 금리 인하 조치가 되레 시장에 역효과를 내면서 과연 기준금리 인하가 해법이 맞는지 의구심이 커지고 있어서다.
4일 주요 언론들은 연준이 ‘빅 컷(Big Cut·금리 대폭 인하)’으로 선수를 치면서 일본은행(BOJ)과 유럽중앙은행(ECB) 등 다른 주요 중앙은행도 공조 차원의 금융완화와 시장 안정책을 내놓을 것인지 주목된다고 보도했다.
전날 연준은 주요 7개국(G7)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들이 긴급 화상회의를 열어 “코로나19 대응에 모든 정책수단을 동원할 준비가 돼 있다”는 공동 성명을 발표하자마자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오는 17~18일로 예정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 앞서 기습적으로 금리 인하를 단행한 것이다. 연준이 FOMC 정례회의에 앞서 금리를 내린 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이다. 금리 인하 폭도 통상의 0.25%포인트 ‘베이비스텝’이 아닌 0.5%포인트였다. 전문가들은 “연준이 다른 중앙은행과 보조를 맞춘 것이 아니라 선수를 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뉴욕증시 3대 지수가 일제히 급락하는 등 시장은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글로벌 경제 상황이 얼마나 좋지 않기에 연준이 이처럼 파격적인 조치를 내놓느냐는 의구심을 부채질한 것이다.
이에 BOJ와 ECB 등 주요 중앙은행들의 고민은 더 깊어지게 됐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8년 10월에는 10개 주요국 중앙은행이 서로 협조해 동시에 금리 인하 등 금융완화 정책을 발표했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지난달 28일 가장 먼저 긴급 성명을 발표해 금리 인하를 예고했고, BOJ와 영란은행(BOE), ECB 등은 이번 주에 성명을 발표했다.
또 연준은 정례 FOMC 회의를 기다리지 않고, 중앙은행들 중 가장 먼저 금리를 인하해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의 공조와는 거리가 먼 모습을 연출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미국 경제 펀더멘털이 강한 가운데 달러화의 독보적인 강세를 경계, 가장 먼저 통화정책 완화를 결정했다고 풀이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중앙은행들이 ‘공조’가 아닌, ‘경쟁’하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특히, ECB와 BOJ는 연준의 선제 조치에 유로화와 엔화 강세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실제로 미국 달러화 대비 유로화 가치는 이날 0.4% 올랐으며 엔화 가치는 한때 1.3% 뛴 106.93엔으로 지난해 10월 이후 최고치를 찍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ECB는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기업을 대상으로 유동성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소식통들은 ECB가 실물경제에 대한 대출을 많이 하는 은행에 저렴한 이자로 대출하는 프로그램인 ‘목표물 장기대출프로그램(TLTRO)’이 기업 친화적으로 더 조정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BOJ는 이번 주 금융기관으로부터 환매조건부채권을 매입해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특별 조치에 나섰다.
다만 ECB나 BOJ 모두 기준금리가 마이너스(-)인 상태여서 연준처럼 공격적으로 금리를 인하할 여지가 부족하다. 이런 상황에서 주요국 중앙은행의 ‘공조’가 ‘경쟁’으로 바뀌면 시장에 새로운 혼란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