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형의 터닝포인트] 코로나19 이면(裏面)

입력 2020-03-04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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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부 차장

2014년 진도. 얼굴 살을 찢어내듯 스쳤던 팽목항의 싸늘한 바닷바람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당시 세상은 사고원인에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하루하루 분노를 쏟아낼 누군가를 찾아 ‘마녀사냥’을 반복하기에 바빴으니까요.

작은 희망의 불씨라도 잡겠다며 진도체육관으로 달려온 실종자 가족 앞에서, 한가롭게 라면을 먹던 장관이 비난을 받았습니다.

다음날에는 인터넷에 떠돌던 괴담 따위를 들고 방송사 카메라 앞에선 민간잠수사 홍 모씨, 또 이튿날에는 세모그룹의 장학금을 받았다던 해경 간부에게 세상의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커다란 재난에 세상은 분노했습니다. 그리고 울분을 참지 못했던 그때, 매일같이 누군가를 찾아내 맹목적인 비난을 쏟아냈습니다. 사고원인이나 실종자 수색은 안중에 없었던 것이지요.

그렇게 반복된 마녀사냥은 그 끝에서 유병언, 그리고 구원파라는 대상을 찾았습니다.

정부 당국도 ‘구조실패’라는 책임을 떠넘기기 위해 엉뚱한 곳으로 눈을 돌렸던 것이지요. 우리는 이제야 사고원인을 다시 밝히겠다며 검찰 수사를 진행 중입니다.

2020년 대구. 이름도 생경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온 나라가 패닉에 빠졌습니다.

하루하루 늘어가는 확진자와 사망자. 이 숫자가 늘어갈수록 국민 불안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정치권은 여야 가릴 것 없이 ‘신천지’를 놓고 정쟁을 벌입니다. 총선이 코앞에 닥쳤고 서로를 견제할 도구 가운데 ‘코로나19 만한 게 없겠다’ 싶었던 것이겠지요.

코로나19는 정부와 정치권의 무능을 감추기 위한 수단으로 쓰여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이곳저곳에서 퍼져 나옵니다. 이들은 그래도 정쟁을 그칠 줄 모릅니다.

그뿐인가요. 우리 사회 이곳저곳에서 불거진 일련의 사건과 사고마저 코로나19 뒤에 꼭꼭 숨어들었다는 게 더 큰 문제입니다.

지난달에는 배우 하정우를 포함한 유명인의 프로포폴 투약혐의가 사회적 논란이 됐습니다.

여느 때 같았다면 세상이 온통 떠들썩했을 텐데, 이 역시 코로나19 뒤에 숨어서 우리의 관심 밖으로 멀어지는 중입니다.

산업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터져 나옵니다. 그럼에도 쏟아지는 코로나19 뉴스 뒤에 가려져 기억 밖으로 멀어집니다.

충남 서산 롯데케미칼 공장에서 대형 폭발 사고가 발생한 날에도 세상의 관심은 코로나19에 집중돼 있으니까요.

자동차업계도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전국을 뒤덮고 있는 코로나19 공포 속에서 여전히 주요 기업은 “우리 논란이 묻혀서 참 다행”이라며 안도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수입차 업계에서는 지난해 연말 불거진 성추행과 성희롱 논란이 코로나19 뒤에 숨었습니다.

직장 내 지위를 이용해 괴롭힘과 인사불이익을 하더니, 이 일을 빌미로 성추행을 일삼았던 일이지요.

그뿐인가요. 국산차 업계에서는 터무니없는 실수로 꽤 잘 만든 신차 하나가 '사전계약 중단' 사태를 맞기도 했습니다.

버젓이 하이브리드를 내세웠으나 나라에서 정한 하이브리드 연비 기준을 간과했던 것이지요.

사정이 이쯤되면 경영을 책임진 누군가가 사퇴를 해도 모자랄 판국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조용히 코로나19 뒤에 숨어서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습니다. 비난받아야 마땅한 자신들의 잘못이 조용히 묻혔다는 것이지요.

지금 당장은 창궐한 바이러스 확산을 막아내는 데 집중하겠습니다. 다만 이 사태가 끝난 뒤에도 이들의 부정과 잘못을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문제의 원인은 무엇이며 대안은 얼마나 마련했는지 꼭 묻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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