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이 가운데 특히 코로나19 위기가 집중된 곳들이 있다. 처음으로 대규모 시설 감염이 발생한 경북 청도 대남병원 정신병동에서는 5층 병동에서만 100명 넘는 확진자가 나왔다.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살아온 정신질환자들의 열악한 현실이 가감없이 조명받게 되면서, 이번 대규모 시설 감염사태는 우연보다는 필연에 가깝다는 걸 우리 사회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대구·경북 지역 확진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4000명을 넘어섰고,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의 94%가 이 지역에서 나왔다. 이곳 의료진은 지난 2주간의 쉼 없는 사투로 피로가 누적되어 쓰러지기 직전에 놓였고, 병상을 구하지 못한 환자들이 치료받지 못해 사망하는 일이 늘고 있다. 일상 의료에 관한 한 선진국에 속하는 우리나라에서, 공공의료 병상과 의료인력은 막상 전염병에 대응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상태임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2018년 우리나라의 인구 1000명당 총 병상 수는 12.3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4.7개)의 2.6배에 달하지만, 공공병원 병상 비율은 전체 병상 수 대비 약 10.3%에 불과하여 OECD 평균(73.7%)의 7분의 1에도 못 미친다. 메르스 사태를 겪은 이후에도 허약한 공공의료 인프라는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고령자와 기저환자들이 주로 감염된다는 통념과 달리, 국내 코로나19 확진자 중에서 20·30대 청년이 무려 41.4%라는 점은 놀랍다. 이들은 대부분 신천지를 통한 집단감염인 것으로 방역당국은 추정하고 있다. 코로나19 덕분에 우리나라의 신천지 교인의 다수가 청년층이라는 사실도 국민들이 알게 됐다. 우리 사회가 청년세대 문제에 무기력하게 손 놓고 있는 동안, 신천지는 사회에 마음 붙이지 못한 불안한 청년층을 문화전도를 통해 정성 들여 공략해 신도로 삼아왔던 것이다.
결국 바이러스는 우리 사회의 감춰져 있던 취약지점이 어디인지를 우리보다 더 정확히 알고 있었다. 바이러스의 직접 공격만이 아니다. 재난의 위기는 이 사회의 약한 곳으로 증폭되고 있다. 공공병원이나 보건소 등의 공공의료 시스템이 감염병 치료에 집중되자, 진료비 부담으로 일반병원을 이용하기 어려운 이주노동자, 저소득층 등 사회적 약자의 의료 공백에 대한 우려가 나타나고 있다. 가정방문 교사와 아르바이트생, 대구·경북 지역의 식당과 가게들, 일용직 근로자들이 벌이를 잃고 소득 공백에 놓였다. 다른 이들의 일상이 멈출 때에도 일을 멈출 수 없는 저소득 맞벌이 가정은 불안한 마음으로 일터로 나가며 개학이 연기된 3월 내내 돌봄 공백을 견뎌내야 한다. 방학 동안 급식지원 카드를 들고 편의점을 전전한 돌봄공백의 취약계층 아이들에게 개학 연기는 집도 학교도 밥을 주지 않는 시간의 연장이다. 몇몇 지자체는 결식아동을 위한 급식카드 혜택을 이 기간에도 사용할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끼니마다 요일마다 지자체마다 지원체계가 다른 아동급식 지원사업의 복잡한 전달체계는 어려운 환경의 모든 아이에게 따뜻한 세끼 밥을 제공하는 복지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대응조차 어려운 일로 만들고 있다.
복지국가는 제반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국민들의 삶을 안전하게 보장할 책임이 있다. 모든 국민의 삶의 질과 복지를 위해 노력하는 보편적 복지가 중요하되, 위기 상황에서 자원배분의 우선순위는 더 명확해진다. 중증환자와 경증환자를 분별하여 제한된 의료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하듯, 위험에 놓인 저소득층 아동, 고령자, 장애인 등 취약계층의 건강과 복지를 챙기는 데 국가가 우선적으로 노력해야 함이 마땅하다. 국가 채무를 늘리는 재정은 지금처럼 예측 못한 가장 위급한 위기에, 가장 어려운 곳을 위해 쓸 수 있도록 평소에 재정건전성도 챙겨놔야 한다. 위기 앞에 속절없이 무너지는 약한 부분들을 보며, 우리 함께 마음 아파하고 고통을 분담해야 할 때다. 그리고 이제라도 소 잃은 외양간을 고치자. 위기일수록 취약한 이들을 더 챙기는 것이 진정한 복지국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