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 자본주의에서도 지속가능성 소홀히 하지 말아야
얼마 전 모 화학사 관계자와의 미팅. 혼자 한참을 얘기하다 내 낌새가 이상했는지 대뜸 묻는다.
주제는 '기후변화'. 유럽에 본사를 두고 있는 이 기업이 기후변화를 얼마나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고, 여기에 얼마를 투자하고, 어떤 식으로 대응하고 있는지를 설명하던 참이었다.
"한국에서는 기후변화라는 말에 전혀 반응을 안 해요. 미세먼지를 앞세우면 그나마 듣는 정도랄까. 오히려 기업이 기후변화에 관심을 두는 걸 못마땅해하죠."
그러면서 그는 덧붙였다. "유럽은 달라요. 미래의 불확실성에 과감히 투자하는 기업의 가치가 높은 평가를 받죠."
이 관계자의 한탄은 막대해진 금융의 논리가 기업들에 미치는 영향으로 이어진다.
소위 '주주 자본주의'에서 기업의 가치는 장기적인 계획이나 지속가능성보다는 단기적인 수익성을 중심으로 매겨진다.
주주로서 나에게는 당장 100원의 돈을 더 버는 것이 10년 뒤 이 회사의 존립 여부보다 중요하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 이 종목을 팔아 돈을 벌고, 내일은 또 다른 종목을 사면 그만이니까.
거대 자본을 쥔 세력들은 기업들에 "가치 투자를 할 돈으로 배당금을 늘리고 주가를 부양하라"고 요구한다. 그렇게 회사의 '가치'가 높아지면 이들 세력은 이 '가치'를 바로 팔아치운다.
그런데 이 문제는 근본적으로 현재와 미래에 관한 얘기이기도 하다.
경제학적으로 보나 현실적으로 보나 미래가치는 현재가치보다 늘 평가절하될 수밖에 없다. 정유업계의 한 관계자는 회의에서 기후변화에 관한 얘기를 꺼냈다가 "쓸데없는 말 하지 마라"는 핀잔을 들었다고 한다.
'오늘을 사는' 이들에게 미래는 돈 안 되는 것, 쓸모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과거와 현재로부터 미래가 온다는 것, 미래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오래도록 반복된다는 진리를 놓치고 있다.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어라"는 말이 "미래를 준비하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는 점도 말이다.
"페스트균은 꾸준히 살아남아 언젠가는 인간들에게 교훈을 알려주기 위해서 어떤 행복한 도시로 그것들을 몰아넣을 것이다." 요새 다시 '핫'해진 카뮈의 경고를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