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인터넷 방송 업계를 뜨겁게 달군 사건이 터졌다. 아프리카TV에서 방송하는 'BJ 덕자'가 'BJ 턱형'이 대표로 있는 MCN(다중채널네트워크)인 ACCA 에이전시와 계약하면서 갈등이 빚어졌기 때문이다. 인터넷 방송계에서는 찾기 힘든 귀농이라는 소재, 순진하고 밝은 이미지로 큰 인기를 끌던 덕자. 힘들어 하던 그를 본 팬들이 계약 내용이 불공정하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덕자를 도와야 한다는 여론의 시발점이다.
계약 내용은 덕자에게 불리한 조건이 다수 포함됐다. 통상적으로 MCN과 BJ(유튜버)는 수익금의 6:4 또는 7:4로 분배한다. 덕자는 당시 5:5로 수익을 분배하기로 했다. 영상 편집자의 월급을 덕자가 지급하기로 했고, 덕자의 개인 유튜브 채널도 회사에 귀속시킨다는 조항도 삽입했다. 덕자 팬들이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 데에는 마지막 조항의 영향이 컸다.
◇재판까지 이어진 갈등…재판부 "계약은 무효"
덕자 이전에도 MCN과 유튜버와의 분쟁은 적지 않았다. 그러나 덕자의 분쟁은 지난 사건들과 궤가 다르다. 팬들을 중심으로 문제 제기가 이어졌고, 변호사들까지 무료로 변론하겠다고 나서면서 화제가 됐다. 계약 무효를 주장한 덕자를 상대로 턱형 측이 명예훼손과 계약파기 등에 대해 소송을 걸면서 이 사건은 재판까지 이어졌다. 사실상 MCN과 유튜버 간의 계약 문제가 재판까지 이어져 사회 이목을 끈 첫 사례다.
법원은 이 계약을 '무효'라고 판단했다. 덕자가 ACCA를 상대로 낸 민사소송 가처분에서 원고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계약은 무효다. 계약에 구애받지 말고 방송 활동을 하면 된다"는 취지로 결론 내렸다. 계약이 너무 불공정해 무효에 해당한다고 본 것. 덕분에 덕자는 방송 활동을 하면서 팬들과 소통할 수 있게 됐다.
이 사건에서 덕자 변론에 참여한 '로이어프렌즈'의 이경민 변호사(법무법인 LF)는 "법원의 판단은 매우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이경민 변호사는 "계약효력이 유지되면 그간 방송을 못 해 덕자가 잊힐 수 있다"며 "종국적인 판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려 승소하더라도 실익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계약 내용 자체가 일반적인 내용이 아니고 민법 위반 사항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비정상의 정상화 넘어…중요한 것은 '표준계약서'
재판부의 이번 판단은 덕자만을 위한 일이 아니다. MCN이 자행했던 횡포를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그간 일부 MCN은 지원은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유튜버를 수익 도구로 사용했다. 자금력이 부족하고 법적 조언을 구하기 어려운 신인 유튜버는 MCN에 대항할 여력이 없었다. 이 재판 결과는 그간 행해졌던 악습을 타파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
비정상의 정상화를 넘어 중요한 일은 또 있다. 바로 '표준계약서'를 만드는 일. 2008년, 연예인과 연예기획사 간 불공정 계약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이후 공정거래위원회는 표준계약서를 마련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이제 인터넷 방송 업계에서도 '표준계약서'를 생길지 관심이 커지는 상황. '덕자 vs 턱형'의 판결은 표준계약서의 기준이 될 가능성이 있다.
한 MCN 업계 관계자는 "그간 덕자ㆍ턱형의 사건과 유사한 일은 수면 아래에서 꾸준히 발생했다"라며 "이 사건을 계기로 신인이 비교적 공정하고, 합리적인 수준으로 계약할 수 있는 '표준계약서' 논의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재판부의 판단이 업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경민 변호사는 "유튜버가 계약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사례"라며 "이 사건이 하나의 기준이 될 것 같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계약 자체가 불공정해 보이면 덕자 사건이 기준이 되기 때문에 이를 참고하고 판단하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경민 변호사는 이어 "MCN의 지원만으로는 유튜브 채널이 회사의 소유라고 볼 수 없다는 취지의 판결"이라며 "채널의 성장에는 유튜버의 공이 크다. 지원받고 정산하는 부분에서 유튜버의 권리를 찾는 쪽으로 일이 진행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