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은행이 금감원 배상안 ‘불수락’ 결정…‘산업 보호’ 본분 망각"
조붕구 키코(KIKO) 공동대책위원장이 피해기업에 대한 배상안 수락 여부 결정을 미루고 있는 시중은행들을 향해 이같이 일갈했다. 신한, 하나, 대구은행 등 시중은행은 이미 수락 여부 통보 기한을 3차례 연기해 이달 6일까지 최종 답변을 내놔야 한다. 조붕구 위원장은 이번에도 시중은행이 연기 신청을 하거나 불수락 결정을 내릴 경우, 더 이상 고객들은 은행을 신뢰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피해를 입으면 구제해 준다’는 신뢰를 주는 은행만이 경쟁 체제에서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을 것이란 것이 그의 생각이다.
키코 상품으로 큰 손실을 입고 회사 문을 닫아야 했던 조 위원장은 과거 경험을 살려 도산한 기업들을 돕는 한국기업회생지원협회 회장까지 맡고 있다. 혼자서는 싸울 수 없기에 여럿이 뭉쳐서 만든 것이 공대위라는 그의 말처럼, 2일 진행된 인터뷰에서 시중은행을 상대로 작지만 강한 목소리를 내며 사회적 관심을 이끌어냈다.
- 산업은행이 배상안 불수락 결정을 내렸다. 시중은행에 미치는 영향은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의 결정을 따라 시중은행들 역시 불수락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커졌다. 이들이 6일까지 결정 시한을 미룬 것도 산업은행의 수락 여부와 배상안 거부 논리를 참고하기 위한 의도였을 것이다.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하는 국책은행이 제일 먼저 거부 의견을 밝힌 것은 국책은행으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이다.”
- 산업은행의 역할에서 미흡했던 부문은
“산업은행은 말 그대로 국내 산업을 육성하고 키우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기관이다. 산업을 보호해야 하는데 오히려 은행 논리에 따라서 수익 추구에만 몰두했다. 수수료를 챙겨 수익을 남기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둔 것은 산업은행의 본분을 잊은 행위다. 특히, 키코 사태가 발생했을 때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금융연구원 원장으로 있었는데, 당시 피해기업들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으로 언급했다. 이번에도 수차례 면담 요청을 했지만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 배상안 거부를 결정한 산업은행의 논리에 대한 생각은
“최근 이투데이가 보도한 기사를 보고 산업은행의 논리를 알게 됐다. 기사를 보면 산업은행의 법률 검토 보고서에는 ‘거래 기업인 일성의 파생거래 손실은 외화유입액 이익으로 상쇄돼, 실제 발생한 손실은 없다‘라고 언급돼 있는데 전혀 말이 안 된다. 2011년 당시 서울중앙지법 1심 당시 법원에 제출된 ‘피고 산업은행과의 키코 계약 문서’에 피해기업의 손실이 총 120억 원이라고 명시돼 있고, 산업은행도 해당 문서를 갖고 있다. 이투데이 기사를 보고 기자회견을 열어 산업은행의 논리가 명백한 거짓임을 알렸다.”
- 이투데이 보도 이후 산업은행 태도에 변화가 있는지
“이전부터 면담 요청을 했을 때는 이런저런 이유로 날짜를 확정해 줄 수 없다고 면담을 회피했다. 그러다가 이투데이 기사가 나온 당일 오후 산업은행으로부터 갑자기 연락이 와서 면담 날짜를 2일로 정했다. 보도가 나가니까 공대위의 요구에 응답을 보낸 것이다. 이번 면담에서 법률 보고서 작성자가 누구인지 찾을 것이고, 보고서에 나온 사실 관계에 대해 조목조목 따질 예정이다. 내가 직접 키코 상품으로 피해를 본 사람이기 때문에 관계자들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 은행들이 내세우는 배임 문제를 어떻게 보는지
“은행 관계자가 그들의 사익을 추구하는 것은 명백한 배임이다. 그러나 키코 배상은 피해 고객을 위한 행동이므로 배임에 해당하지 않는다. 은행들 논리에 따르면 최근 발생한 DLF 사태로 피해를 입은 고객에게 보상해 주는 것도 배임에 해당한다. 만약 키코 문제가 2020년에 터졌다면 피해 기업들이 전부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소비자보호에 관심을 갖는 금융 문화가 조성되지 못했다.”
- 적합성 원칙과 설명의무를 위반하지 않았다는 의견은 어떻게 보는지
“금융감독원 금융분쟁조정위원회 최종 보고서에도 나왔듯이 은행들은 두 원칙 모두 위반했다. 일단 산업은행과 거래할 시점에서 이미 피해 기업의 통화옵션 계약 규모가 직전 연도 수출액을 상당히 초과했기 때문에 적합성 원칙 위반이다. 아울러 산업은행은 환율이 제한적으로 변동할 것이라고 설명한 증거도 있기 때문에 설명의무도 위반이다. 은행들은 유선으로 자세히 설명했다고 하지만 키코 상품은 기존에 존재하지 않던 생소한 상품이었기 때문에 제대로 이해한 실무자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 신한·하나·대구은행 모두 불수락 결정을 내린다면
“이미 후속 조치를 준비하고 있다. 참여연대와 은행들 감사 청구 계획을 세웠다. 제일 먼저 산업은행을 대상으로 감사원에 국민 감사 청구를 신청할 예정이다. 산업은행이 의원실에 제출한 법률 검토 보고서는 명백히 허위 사실을 바탕으로 작성된 것이므로, 공문서에 거짓을 기재한 행위부터 국책은행의 본분을 다하지 못한 것까지 전부 감사 대상이 될 것이다.
- 최근 출범한 금융피해자연대의 궁극적 목표는
“키코 싸움을 지속하면서 깨달은 점이 있다면 뭉쳐야 산다는 것이다. 금융소비자 개인은 너무 약한 존재다. 대형 은행들과 싸우면 무조건 질 수밖에 없다. 대형 은행들은 김앤장부터 국내 최대 로펌들과 다 자문 계약이 돼 있다. 그래서 법정에서는 그들을 절대 이길 수가 없다. 앞으로 금융상품으로 피해를 입은 소비자는 점점 더 많아질 것이고, 피해자가 힘을 합쳐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 금융피해자연대다. 키코 공동대책위원회, 부산저축은행 비상대책위원회, IDS홀딩스 피해자연합회, 밸류인베스트코리아 피해자연합회 등 4개 금융 피해사건 피해자 단체가 힘을 합쳤다. 앞으로 일어나는 금융 피해사건에 공동으로 대응할 것이다.”
- 현재 한국기업회생지원협회 회장도 맡고 있는데
“나 역시 키코 상품 손실로 회사가 도산했다. 이런 경험이 있다 보니 도산한 기업인들의 상황이 남일 같지 않다. 다시 경영을 하려는 의지가 확고한 사람들, 개인의 잘못이 아닌 외부 환경 때문의 비자발적으로 회사를 닫아야 했던 사람들, 이런 기업인들을 돕기 위한 단체가 한국기업회생지원협회다. 주로 법정 관리에 들어갔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전문가를 붙여주거나, 투자를 받을 수 있도록 금융회사나 펀딩 회사를 연결해준다. 물론 키코 사태로 도산한 기업들도 이 단체를 통해 몇몇 지원을 받았다.”
- 얼마 전 ‘은행은 당신의 주머니를 노린다’라는 책을 썼다. 출판 계기는
“키코 보상을 위해 싸워온 시간들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긴 싸움의 과정이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으면 은행들은 그들만의 이익을 위한 약탈적 행위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특정 금융상품으로 어떤 피해자가 발생했고, 이 피해자들이 어떻게 절망으로 빠지게 됐는지, 그리고 피해자들이 재기를 위해 싸우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얼마나 무관심했는지를 알리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