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불확실성 확대로 발주 감소 예상…가존 플랜트 발주 지연ㆍ규모 축소도
올해 초 국내 건설사들은 대규모 해외 수주 소식을 잇달아 전하며 연간 실적 목표치를 높였다. 경기 침체와 부동산 규제 강화로 주택 공급이 30만 가구 수준을 밑돌 것으로 예견되는 상황에서 해외 건설사업이 민간 수주의 대안이 될 것이란 기대감에서다. 그러나 갑작스레 닥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연이어 불거진 국제유가 급락 사태로 해외건설 수주시장 역시 암초를 만났다.
해외건설협회와 관련업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해외건설 수주 금액은 9일 현재까지 113억9900만 달러(약 13조8500억 원)로 집계됐다. 이미 지난해 연간 전체 실적인 223억2700만 달러의 절반을 넘어서는 규모다. 전년 동기 62억9300만 달러와 비교하면 80% 급증했다.
국가별로 보면 중동지역이 67억 달러를 웃돌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아시아는 42억 달러로 뒤를 이었다. 다음으로 중남미(2억6500만 달러)와 아프리카(2억600만 달러), 태평양·북미(9000만 달러) 등 순이다. 유럽은 마이너스 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지난해 성적의 기저효과와 주요 산유국이 모인 중동에서 잇따른 수주 낭보에 기인한다. 지난해 해외건설 수주 금액은 2006년 이후 13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국내 건설사가 강점을 플랜트 위주의 다운스트림(수송ㆍ정제ㆍ판매)이 아닌 업스트림(개발ㆍ생산) 위주의 발주가 진행되면서 223억 달러에 그쳤다.
하지만 올 들어 우리 기업들은 대규모 해외 수주 소식을 연달아 전하며 기대감을 올렸다. 삼성엔지니어링은 연초 1조9000억 원 규모의 알제리 ‘하시 메사우드 정유 플랜트’ 공사를 따내며 수주 잭팟을 터뜨렸다. 이 회사는 곧이어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석유회사인 아람코와 2조1000억 원 규모의 ‘하위야 우나이자 가스 저장 프로젝트’ 계약을 체결했다.
현대건설은 1월 현대엔지니어링, 포스코인터내셔널과 컨소시엄을 꾸려 알제리 ‘우마쉐3 복합화력발전소 공사’를 8500억 원에 따냈다. 2월에는 포스코건설, 현대엔지니어링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3조3000억 원 규모의 '파나마 메트로 3호선 공사'를 공동 수주했다.
삼성물산은 1월 방글라데시 항공청이 발주한 ‘다카 하즈라트 샤흐잘랄 국제공항 확장 공사’의 본계약을 1조9000억 원에 체결했다. 2월에는 아랍에미리트(UAE) 수전력청에서 1조1500억 원 규모의 ‘푸자이라 복합화력발전소 공사’를 수주했다.
이 같은 선방에 힘입어 올해 해외 수주 실적은 2월까지만 지난해 연간 수주액의 40%를 넘어선 바 있다. 이에 업계에서는 실적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한껏 높아졌다. 하지만 전 세계로 확산한 코로나19와 국제유가 급락 사태로 수주 행보에 급제동이 걸렸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글로벌 경제가 직격타를 맞은 와중에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의 원유 감산 협상이 차질을 빚으면서 최근 유가는 배럴당 60달러에서 20달러대로 폭락했다. 유가 급락으로 인해 사우디아라비아 국영석유회사 아람코를 비롯한 국내 건설사의 주요 발주처들은 투자 규모를 축소할 계획이다. 이전에 계획했던 플랜트 발주를 지연시키거나 규모를 줄일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여기에 이란과 이라크를 둘러싼 지정학적 리스크도 우려를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분쟁 확대로 호르무즈해협이 봉쇄되면 우리 기업의 주요 수주 지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등지에서 공사 진행과 수주에 피해를 받을 수 있다.
지난해와 달리 중동지역의 다운스트림 발주에 힘입어 국내 건설사들의 해외 수주 증가세 전환이 예상됐지만, 불확실성 확대로 수주 물량이 줄어들 것이란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김현 한국기업평가 책임연구원은 “중동 산유국들은 재정 투입과 프로젝트파이낸싱(PF) 조달을 통해 화공설비 등 비원유 부문에 대한 투자와 인프라 확충을 진행해왔다”며 “하지만 최근 국제유가 하락으로 재정수지가 악화되면서 투자는 줄어들 가능성이 크고, 금융시장 경색으로 PF를 통한 사업자금 조달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김 연구원은 “사우디 아람코는 설비투자 축소를 예고했고 여타 중동국가들도 유가 회복이 지연될 경우 자금조달 문제와 사업성 저하로 계획 중이던 플랜트 투자를 축소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지정학적 리스크 확대와 유가 급락으로 해외 수주의 불확실성이 크게 높아지면서 수주 물량이 예상보다 크게 줄어들 수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