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SJ에 따르면 중국 의료용품 공장에 전 세계 구매자들이 몰리면서 현지 업체들이 계약 조건을 일방적으로 결정하거나 전액 선불을 요구하는 사례가 다반사다. 의료물자난이 심각한 외국 정부와 병원, 기업들의 약점을 이용해 이른바 ‘갑질’을 하는 것이다.
미국 피츠버그대학 메디컬센터에서 중국 거래 관계를 책임지고 있는 제프리 번스타인은 “이런 상황에서 물품 조달을 보장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매우 무질서한 ‘와일드 웨스트’ 시나리오”라고 지적했다.
중국 업자들의 횡포에서 구매자들은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거의 전액을 선불로 내고 있다. 중국과 거래했던 한 관계자는 “중국 업체는 계약 성사 시에 최대 50%, 주문한 물품을 전달하기 전에 나머지 50%에 대해서도 지불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수요가 많은 인공호흡기 시장에서는 일부 모델 가격이 5만 달러가 넘고, 심지어 제품을 보기도 전에 선수금으로 대금의 40%를 송금하라는 요구를 받는다. 미국의 한 주(州) 정부는 공급업체와 접촉했을 때 시찰을 위해 인공호흡기를 보관하고 있다는 창고 주소를 건네받기 전에 10만 위안의 지불을 요구받았다고 한다.
평소대로라면 구매 담당자는 공급업체에 대해 철저히 심사를 한 후 주문 제품을 받고 나서 1개월 후에 대금을 지불하는 게 정석이다. 하지만 현재 코로나19 위기는 기존의 기준을 최대한 보호하면서도 신속하게 결단을 내려야만 해서 여간 고민이 아니다.
크리스찬 미첼 일리노이 주 부지사는 “대부분의 경우 중간업자나 유령회사 같은 상대와 거래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토로했다. 그는 일리노이 주의 조달 책임자로, 중국에서 1000만 개의 인공호흡기 구입을 승인했다. 그는 “평소라면 취할 수 없는 수준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기다 더 심각한 건 암시장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것이다. 상하이다셩위생용품제조유한공사가 운영하는 공장의 판매 직원은 최근 한 고객이 마스크 구입을 문의하자 “마스크는 10월까지 제공할 수 없다”고 했다. 중개업자들 사이에서 이 회사 제품은 품질기준이 높아 마스크계의 ‘루이뷔통’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WSJ가 최근 이 회사 공장을 방문해보니 근처 길가에 다셩의 생산 라인에서 나온 마스크를 여러 사람이 활발하게 거래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 공장 관계자로부터 500만 장의 마스크를 확보했다는 두 사람은 WSJ에 마스크 1매 당 18.50위안에 되사지 않겠냐고 제안했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이들은 장당 2위안의 이윤을 남길 수 있다.
화물기 운항이 줄어들고 있는 것도 두통거리다. 중국은 지난달 외국 항공사의 중국 노선을 1주일에 1편으로 제한하는 한편, 여객기에 싣고 중국에서 운반할 수 있는 화물의 양을 크게 줄였다. 중국산 ‘N95’ 규격 마스크를 미국으로 수입하는 크라우드헬스의 창업자 던컨 압덴누르는 “미국 대형 배송업체 UPS가 중국에서의 화물 취급량을 지난달 시점에 하루 1000kg에서 50kg으로 줄이기 시작했다”고 했다. 이에 따라 마스크를 하루 3000장밖에 보낼 수가 없고, 그 이상이 되면 고액의 운송료가 든다고 한다. 서방 국가들이 필수 의약품 공급을 상당 부분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매사추세츠 주 밀포드의 자치단체 관계자는 “미국은 이번 위기로 중국에 대한 과잉 의존을 절실히 깨달았다”면서 “앞으로 심판의 날이 와서 우리가 공급망을 바로잡길 바란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