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히 한국 야구 맞는데… 화면 속 선수들은 한국 프로야구 선수들이 맞는데… 왜 중계 음성은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걸까요?
코로나19가 또 일을 쳤습니다. 이건 전화위복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기적’이라고 해야 할까요.
미국 최대 스포츠 채널인 ESPN에서 2020 한국 프로야구를 생중계합니다. 이따금 ESPN에 등장하는 한국 선수들은 대부분이 유럽과 미국에 진출한 해외파들이였는데요. 그런데 이번에는 한국 선수, 한국 팀이 무더기로 ESPN에 전면 등장합니다.
야구의 본고장인 미국은 현재 코로나19 확진자 120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확산세가 잦아들지 않고 있고, 사망자도 세 자릿수 단위로 늘어나는 상황인데요. 이에 봉쇄조치, 거리 두기 등 다양한 코로나 감염 대비 정책이 이어지면서 야구경기는 기약할 수 없게 돼버렸습니다.
야구 경기에 목마른 미국 야구팬들을 위해 ESPN은 지구 반대편, 한국 프로야구를 생중계하기로 했습니다. 덕분에 한국 프로야구 선수들은 미국 TV 화면에 강제로 진출 당하는 쾌거(?)를 이뤘죠.
아무리 좋아하는 야구라고는 하지만, 한국 프로야구엔 너무나도 무지한 미국 캐스터와 미국 야구팬. 부랴부랴 한국 프로야구 공부에 나섰는데요. 이런 모범생들을 위해 ESPN은 홈페이지에 한국야구의 특징, 팀 분석과 상황 등을 상세히 게재했습니다.
특히 예상 랭킹 분석은 참으로 뼈를 때렸는데요. ESPN은 예상 순위 1위로 키움 히어로즈를 꼽았습니다. 키움의 육성 능력과 박병호, 강정호 등 전직 메이저리거를 배출한 전력을 높이 샀죠. 예상 꼴찌는 한화 이글스였습니다.
“한화 이글스는 리그의 사랑스러운 패배자”, “이글스 팬들은 점수와 상관없이 경기를 버티면서 본다”, “나이든 베테랑과 경험 없는 어린 선수들로 채워진 팀”이라는 아픈 팩폭충고를 남겼죠. (그래도 이글스라 행복합니다)
그런데 말이죠. 최소한 개막 첫 경기는 ESPN의 분석능력이 뒤통수를 맞았습니다. 상위권을 예상한 두산 베어스, kt 위즈, SK 와이번스가 모두 패했죠. (한화 이글스는 11년 만에 개막전 승리) 역시 크보(KBO를 소리나는 대로 발음한 것)는 함부로 예측하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 야구팬들은 저마다의 다양한 이유로 응원팀을 꼽았습니다. 자신이 애용하는 가전제품과 자동차의 브랜드를 따라 정하는가 하면, 지역 이름과 비슷한 팀을 고르기도 하죠.
특히 NC 다이노스는 미국의 한 주 전체가 응원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는데요. 무한 지지를 보내는 노스캐롤라이나입니다. 미국 남동부 대서양에 있는 노스캐롤라이나는 스포츠로 제법 유명한 지역인데요. 지역 연고로 풋볼, 농구, 아이스하키 등 다양한 팀이 있지만, 야구팀만은 부재였죠.
그런데 이 노스캐롤라이나가 NC 다이노스에 흠뻑 빠져버렸습니다. 노스캐롤라이나의 약자인 NC와 같은 이름이었기 때문이죠. 거기다 노스캐롤라이나는 공룡 화석이 많이 발굴되는 지역이어서, “이것은 운명”이라고 외치며 NC 다이노스의 골수팬을 자처했습니다.
한국 프로야구 생중계 소식이 알려지자 가장 큰 관심을 받은 것은 바로 ‘빠던’이었는데요. 빠던은 말 그대로 ‘빠다 던지기’, 타자가 홈런 이후 배트를 공중에 던지는 장면을 뜻하는 말입니다. (영어로는 배트 플립·Bat flip)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자주 볼 수 있는 이 장면이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는 해선 안 되는 불문율로 여겨지는데요. 미국에서 빠던은 상대 투수를 도발하는 행위로 받아들여집니다. 타자가 만약 빠던을 한다면 다음 타석에서 보복구를 맞거나, 벤치 클리어링(스포츠 경기 도중 선수들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을 때, 양 팀 선수들이 모두 벤치를 비우고 싸움에 동참하는 행동)이 벌어지는 것은 당연한 순서죠.
하지만 한국 야구는 다릅니다. 홈런 이후 타자의 쇼맨십 일부분일 뿐인데요. 5일 개막전에서도 미국 ESPN 중계진은 홈런에도 빠던이 나오지 않자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이후 NC의 모창민이 홈런 이후 빠던을 선보이자 “저것이 바로 한국의 배트 플립입니다”라고 환호했죠. 곧바로 트위터 실시간 트랜드에도 ‘배트 플립’이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이날 이벤트(?)는 빠던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광주 기아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기아 타이거즈와 키움 히어로즈의 경기가 중단되는 일이 벌어졌는데요. 인근 건물에서 발생한 화재로 경기장 하늘이 뿌옇게 흐려지는 모습이 그대로 미국 시청자들에게 중계됐죠. 이에 시청자들은 “불 때문에 야구가 중단됐어. 한국은 참 야생적이다”라는 감상평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한국팬들은 한국 프로야구의 강제 미국진출이 신기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불안감’을 지울 수가 없는데요. 메이저리그보다는 여러 가지로 부족한 평균 실력이 가감 없이 중계되기 때문이죠. 낯 뜨거운 상황이 벌어질 우려가 우리를 떨게 합니다.
하지만 그것 또한 경기 일부겠죠. 경기는 ‘잘’하기도 해야 하지만 ‘재밌’기도 해야 손님은 몰려들기 마련입니다. 예능 야구를 미국에도 펼칠 기회라는 매우 긍정적인 마인드로 이 상황을 즐겨봅니다.
미국 ESPN은 8일에는 기아 타이거즈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를, 9일과 10일에는 LG 트윈스와 NC 다이노스의 경기를 생중계합니다.
이 황당하지만 웃기고, 놀랍지만 걱정스러운 코로나발 야구 이벤트, 우리 모두 신나게 즐길 준비 되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