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1914년 6월 28일 세르비아의 암살 사건으로 촉발된 1차 세계대전은 1918년 끝날 때까지 2000만 명이 넘는 엄청난 인명피해를 가져왔다. 서부전선은 1914년 말부터 교착 상태에 빠진 후 1918년까지 참호 전쟁으로 바뀌었고, 그 과정에서 기관총, 가스, 탱크 등 온갖 신무기가 활용됐다. 하지만 누구도 승기를 잡지 못했다. 무력이 아닌 내부의 혁명으로 전쟁은 끝이 난다. 1차 세계대전의 진정한 종전은 2차 세계대전 나치의 항복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프랑스와 영국은 독일에 승리했지만 피해는 피차 마찬가지다. 전쟁비용으로 소진된 금은 미국으로 넘어갔고, 이를 보충하기 위해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에 과도한 전쟁 배상금을 요구했다.
금을 보충하기 위한 경제 블록화는 결국 대공황으로 치닫게 되는 원인 중 하나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1919년 영국 대표단으로 파리평화회의 현장에 있었고, 1919년 11월 ‘평화의 경제적 결과’를 출간한다. 케인스는 패자에게 관용을 베풀지 않은 베르사유조약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러한 조약에 이르게 된 이유가 정치에 있음을 지적했다.
영국의 로이드 조지와 프랑스의 조지 클레망소는 전후 경제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보다, 그저 국민의 분노를 달래주기에 급급했다. 독일을 징벌하는 데 몰두했고, 결국 이는 독일 국민의 열렬한 지지 속에 히틀러가 집권하는 데 일조한다. 2차 세계대전이라는 진통을 겪고 나서야 케인스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마셜 플랜은 징벌이 아닌 관용으로 패전국을 대했고, 그 결과 세계 경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1948년에서 1970년까지 꾸준히 성장했다.
오래된 이야기를 다시 끄집어낸 이유는 1차 세계대전 이후와 현시기를 떠올리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대공황으로 치닫기에는 연준의 행보가 발 빠르다. 프리드먼과 슈워츠는 ‘미국화폐사’에서 대공황으로 치달은 이유가 연준의 화폐공급 축소에 있음을 지적했다. 다행스럽게도 버냉키의 전공은 대공황이었고, 돈의 힘으로 금융위기에서도 벗어났다. 버냉키 이후의 연준은 이런 견해를 따라왔고, 이번 코로나 팬데믹 역시 적절하게 대응하고 있다.
금융시장이 안정되자, 비관론자의 화살이 다음으로 향한 곳이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이다. 트럼프는 중국의 코로나 책임론을 제기했고, 이후 1월 15일의 미국과 중국 간 합의가 흔들릴 수 있다는 의구심이 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각자도생의 시대가 시작되었고, 미중 무역 전쟁은 이제 시작이라는 시각이다.
하지만 두 차례 세계대전에서 인류는 큰 교훈을 얻었다. 자급자족의 고립주의는 모두에게 해가 되고, 시장을 강탈하기 위한 패권주의는 자해 행위임을 알게 된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각국의 갈등도 있었지만, 경제 전체가 파국으로 치닫기보다 적절한 균형점을 찾기 위한 노력이 뒤따른 배경이다.
오히려 코로나 이후 중국의 역할론은 힘을 얻고 있다. 중국의 경기는 1분기에 저점을 다지지만,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는 2분기 이후에나 가능하다. 2000년대의 중국은 생산기지였지만, 2020년대의 중국은 글로벌 소비의 한 축이 되어야 한다. 중국 역시 이미 루이스 전환점을 지났고, 이제 지속 성장을 위해서는 위안화 절상과 소비확대가 필요하다. 중국은 금융위기 이후 투자의 성장 기여도가 급격히 하락했고, 2012년을 기점으로 3차 산업이 2차 산업을 추월한다. 그래도 GDP 대비 비중은 38.7%에 불과하다.
역설적으로 코로나 팬데믹은 이러한 중국의 구조개편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했다. 미국은 달러를 과잉 공급했고, 이를 외부로 유출해야만 한다. 중국도 저축보다 소비로 나아가야 한다. 기업에 내부 자금을 공급하기 위해선 40%가 넘는 저축률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고용 창출을 위해선 제조업보다 서비스업의 약진이 더 요긴하다. 자금 마련도 내부보다 외부에서 끌어오면 된다. 미국은 잉여생산물을 팔 시장이 필요하며 투자를 통해 달러를 조절해야 한다. 2000년대 글로벌 불균형이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한편, 6월 6일부터 중국은 적격외국기관투자가에 대한 주식 및 채권 투자 한도를 폐지한다. 이미 중국은 미국에 손을 내밀었고, 미국은 이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5월 21일 개최되는 양회에서 중국의 환율제도 변화를 시사하는 논의가 진전된다면, 중국의 소비역할론은 더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위안화 강세를 기다리고 있다. 빠르게 회복되는 중국 경제를 고려하면, 달러와 유로화 대비 강세는 당연하다. 위안화와 연동되는 원화의 제자리 복귀를 기대한다. 원화의 상대적 강세는 외국인의 귀환을 의미하며 동시에 코스피의 상단을 여는 모멘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