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칼럼니스트
그런데 얼마 전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기사 하나를 접했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중국 연구진이 방사광가속기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인체 세포에 침투할 때 사용하는 스파이크 단백질의 입체 구조를 처음으로 밝혔다고 한다. 이 발표에 유독 눈길이 갔던 건 2009년 신종플루 대유행 당시, 치료제 타미플루가 비교적 빨리 개발된 덕에 대규모의 피해를 막을 수 있었던 기억 때문이다. 타미플루의 이른 개발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와 단백질의 결합 구조, 좀 더 풀어 말하자면 세포막 바깥에서 작용하는 병원성 단백질이 어떻게 세포막과 반응하는지 밝힐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단백질 등의 생체분자를 들여다보는 건 그다지 새로운 일은 아니다. 19세기가 끝나갈 무렵 독일 물리학자 뢴트겐은 매우 강한 투과력을 가진 광선 하나를 찾아냈는데, 이 광선에 알 수 없다는 의미로 X-선이란 이름을 붙여줬다. X-선은 파장이 매우 짧아 원자 단위에서 물질의 물리화학적 구조에 대한 정보를 전달해 줄 수 있다. DNA의 이중나선 구조도 X-선을 이용한 수많은 연구 결과 중 하나다. 그런데 치료제나 백신의 개발을 위해서는 정지해 있는 단백질의 구조를 규명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바이러스 단백질이 세포막을 뚫고 침입하는 것과 같은 능동적인 변화의 모습을 관찰하고 그 메커니즘을 알아내는 게 매우 중요하다. 그렇다면 단백질 분자와 세포의 반응처럼 순식간에 이루어지는 과정을 어떻게 관찰할 수 있을까? 방사광가속기에 그 해답이 있다.
가속기는 말 그대로 입자의 운동 속도를 빠르게 증가시키는 장비인데, 이때 가속 원리에 따라 선형 혹은 원형 가속기로, 그리고 가속되는 입자에 따라 양성자 또는 중성자 가속기 등으로 명칭을 달리한다. 하지만 이름과 무관하게 모든 가속기의 주목적은 입자의 가속 및 충돌 그리고 이때 발생하는 자연현상 연구로 동일하다. 하지만 전자를 가속시키는 방사광가속기의 경우는 좀 다르다.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된 전자가 전자기장 내에서 로렌츠 힘이란 걸 받는데, 이로 인해 전자의 속력과 운동 방향이 변한다. 예를 들어 횡방향으로 운동하던 전자는 로렌츠 힘 때문에 아래 방향으로 그 궤도가 휘게 되는데, 이때 X-선과 같은 방사광의 형태로 에너지 방출이 발생한다. 방사광가속기는 이 방사광을 모아 물질 분석 연구에 활용하려는 첨단장비로, 다양한 파장의 빛을 만들어낼 수 있어 ‘빛의 공장’으로도 불린다.
사실 방사광은 불필요한 에너지 손실, 그리고 이로 인한 입자 가속의 어려움을 의미하기 때문에 오랫동안 성가시고 불편한 존재 취급을 받아왔다. 이런 인식 때문인지 1980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방사광 발생과 사용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2세대 방사광가속기가 건설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더 늦어서 1994년 경북 포항에 3세대 원형 방사광가속기가 들어섰고, 2017년 4세대 선형 X선 방사광가속기가 추가됐다. 하지만 여기서 생산되는 빛의 품질이 좋지 않아 정밀 연구에 한계가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4기가전자볼트(GeV) 수준에 밝기가 태양 빛의 1000억 배에 달하고 빔을 생산할 수 있는 4세대 원형 방사광가속기가 충북 청주에 2028년 가동을 목표로 건설될 거란 발표가 있었다. 이 정도의 가속기라면 기초과학 연구나 제반 산업 분야에 획기적 영향을 미칠 연구가 가능하리라 본다. 개인적으로는 이곳에서 공공의 선을 확대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연구가 보다 많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같은 맥락에서 이번 코로나바이러스와 같은 감염병의 치료제나 백신 개발에 일조할 수 있는 연구 결과도 나와주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