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25일 열렸던 ‘2020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코로나19 사태의 위기 극복을 위한 확장재정을 집중적으로 강조했다. ‘전시(戰時) 재정’이라는 말로 정부의 재정역량을 총동원해 지출을 늘릴 것을 거듭 주문했다. 그러나 막대한 재원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 뾰족한 대책이 제시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정부의 뼈를 깎는 지출구조조정이 필수적”이라고 말했지만, 그것으로 역부족이다.
문 대통령은 재정건전성 악화 우려에 대해서는, “우리 재정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매우 건전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작년 OECD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비율은 평균 110% 수준이고 우리는 40.7%였다. 하지만 이 수치를 단순비교해서는 안 된다. 부채비율 100%가 넘는 국가에는 부채 증가의 문제가 별로 없는 미국, 일본 등 기축통화국과 그리스, 포르투갈 등 만성적 재정위기에 빠진 나라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지금처럼 계속 재정지출을 늘리면 우선 적자국채를 발행해야 하고, 결국 재정수입 확대를 위한 증세(增稅)가 불가피하다. 문 대통령은 이를 언급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증세론은 이미 불이 지펴지고 있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최근 “증세는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말했고,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도 “세입기반 확충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 20일 내놓은 경제전망에서 “증세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고 그 필요성을 제기했다.
장기화된 경기 부진에다 코로나 충격으로 세입 여건은 갈수록 나빠지는데 대규모 재정지출을 위해서는 증세 말고 마땅한 대안이 없다. 그러나 증세는 여론 악화와 국민 반발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게다가 국민들이 내는 세금,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등 4대 보험료가 급증해 이들을 합친 국민 1인당 부담액이 1000만 원을 넘었다.
미래통합당 추경호 의원이 분석한 결과, 작년 국민부담액은 한 사람당 1014만1000원이나 됐다. 2015년 771만5000원에서 4년 새 31.4%나 늘었다. 국민부담액을 GDP로 나눈 부담률도 2015년 23.7%에서 지난해 27.4%로 높아졌다. 국민부담은 더 빠르게 증가한다. 저출산·고령화에 정부의 복지·의료보장 확대 정책, 또 전국민 고용보험 적용 등으로 재정지출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이를 국민들이 떠안아야 한다.
경제가 성장하고 소득이 늘면 국민부담 증가가 문제되지 않겠지만, 성장과 소득 전망은 갈수록 어두워지고 있는 현실이다. 정부·여당은 국민 저항을 피하려 보편적 증세 대신 또 ‘부자 증세’의 정치적 접근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그것으로 감당하는 데 한계가 뚜렷하다. 달리 길이 없다면, 정부가 솔직하게 국민들을 설득하는 자세부터 보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