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금융시장에 환율전쟁의 그림자가 다시 드리우기 시작했다. 홍콩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를 둘러싼 미·중 간 갈등이 통화 약세 경쟁으로 비화할 가능성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중국 위안화 가치가 달러당 사상 최저치까지 떨어진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 사태 이후 조기 경제 회복을 위해 ‘약달러’ 정책을 펼 경우 미·중 무역 상대국들도 좌시하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28일 CNN에 따르면 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제정을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 간 충돌 우려가 고조되면서 중국 위안화 가치가 사상 최저치로 떨어졌다. 전날 밤 홍콩 역외시장에서 달러 대비 위안화 가치는 한때 7.1964위안으로 0.7% 하락했다. 이는 2010년 홍콩 역외시장이 개설된 후 최저치이자 미·중 환율전쟁이 고조됐던 작년 9월 3일 기록한 최저점보다 낮은 것이다.
앞서 중국 인민은행은 달러에 대한 위안화 기준 가치를 25일과 26일 이틀 연속 12년 만의 최저치로 고시했다. 노무라종합연구소의 기우치 다카히데 연구원은 “미국에 얕잡아 보이고 싶지 않다는 중국의 강한 의지가 엿보인다”고 분석했다.
시장은 위안화 가치가 새 심리적 저항선인 달러당 7.2위안까지 깨질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배넉번 글로벌 포렉스의 마크 챈들러 수석 시장 전략가는 더 나아가 “위안화 가치가 달러당 7.40위안까지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위안화는 미국과 중국 사이의 긴장감 탓에 하락 압력을 강하게 받고 있다.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인권 문제와 홍콩 국가보안법, 대중국 경제 제재 등 미국과 중국은 다방면에서 충돌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인민은행이 위안화 약세를 일부러 용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중국 측의 위안화 약세 용인이 세계적인 환율전쟁으로 번질 것이라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챈들러는 “중국은 위안화에 대한 하방 압력을 버티는 것 같다”면서 “그러나 이것이 위안화나 홍콩달러는 물론 동아시아와 신흥시장 등의 통화로 광범위하게 번지는 ‘스필오버(spillover effect)’ 현상을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스필오버란 특정 지역에 나타난 현상이 다른 지역으로까지 퍼지거나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말한다. 즉, 위안화 약세가 다른 나라들로 하여금 통화 약세 경쟁을 부추겨 전 세계가 환율전쟁의 영향권에 휘말릴 수 있다는 의미다.
마치 1년 전 구도가 재현되는 양상이다. 작년 5월 트럼프 정권은 미·중 무역협상 부진을 이유로 중국에 보복 관세를 매기고, 위안화를 의도적으로 평가절하했다며 중국을 환율조작국 리스트에 올렸다. 여기에 미국 중앙은행이 무역에서 자국이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하려고 달러화 약세를 유도할 목적으로 금리 인하 압력을 가해, 미·중 대립이 결국 유럽과 일본 등 주요국까지 말려든 환율전쟁으로 발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