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보는 세상] ‘586을 위한 변명’ 영화 1987

입력 2020-05-28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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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영 크로스컬처 대표

한때 386(30대, 80년대 학번, 60년대 출생 세대)으로 불리던 그들은 이제 586까지 사양이 높아졌다. 그들에 대한 평가는 아직 호불호가 나뉜다.그럼에도 한국의 민주주의를 본격적으로 열었던 6·10항쟁의 주역임은 어느 누구도 부정하진 못할 것이다. 그 시대의 벽화를 씨줄 날줄로 엮은 영화가 ‘1987’이다.

1980년 ‘서울의 봄’을 박살 낸 군인세력은 전두환을 대통령으로 옹립하기 위해 광주시민을 무참히 학살한다. 이어지는 철권독재의 시대. 결국, 맞서 싸우는 전위세력은 대학생이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거리의 싸움과 구속, 그리고 분신투쟁까지. 도덕성을 상실한 정부로선 폭력과 폭압 없이는 정권을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이런 내외적 모순과 격돌이 터진 게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은폐조작’ 사건이었다.

맨 처음 ‘쇼크사’로 보도한 중앙일보 신 기자, 그리고 이 보도를 받아 끈질기게 파헤친 동아일보의 윤 기자, 법대로 시신을 부검케 한 최 검사, 부검 결과를 용기 있게 발표한 황 박사, 고문 은폐조작 사실을 알린 교도관 등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1987’에는 수많은 영웅이 등장한다. 그러나 보수언론이나 공안검사나 공무원인 교도관까지도 폭압 통치에 균열을 내도록 만든 힘은 80년 이후 7년 동안 쉼 없이 분노하고 몸을 던져 희생했던 민중들의 축적된 투쟁 결과였다.

영화와 사실이 다른 점 몇 가지만 짚어보자. 최 검사(하정우 분)의 실명은 최환이다. 그는 공안검사로 명성이 자자한 엘리트 검사였다. 박종철 사건을 이대로 넘겼다가는 향후 검찰조직에 해를 끼칠 거라는 판단에서 ‘법대로’를 외쳤고, 이후에는 영화완 다르게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고 출세가도를 달린다. 중앙일보 신 기자도 첫 보도만 했을 뿐 후속 취재가 붙지 않아 이후 동아일보에 주도권을 넘기고 만다. 정론·직필의 기자는 당시에도 소수였다는 얘기다. 연희네 가게 이야기는 극적 재미를 위한 허구다. 연희네 슈퍼는 옛 정취를 간직한 곳(목포 서산동)에서 촬영됐다.

우리 사회가 그동안 진일보한 것은 명확하다. 피로써 지켜내고 쟁취한 민주주의는 우리 사회의 가치를 높인다. 그것이 민주주의 힘이다. 박종철과 이한열도 모두가 함께 잘 사는 사회가 되길 꿈꾸었을 것이다. 6·10민주항쟁도 올해로 벌써 33주년이 되었다.

(사족, 박종철이 고문을 당하면서도 그렇게 지키고자 했던 대학 선배 박종운은 이후 박종철의 생각과 대척점에 서 있던 모 정당의 주위를 맴돌다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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