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충남대 무역학과 교수
국가 부채의 경제적 부담을 알려면 소득, 즉 경제규모(GDP)와 비교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림>은 미국 의회예산처(CBO)의 GDP 대비 국가부채비율(연방정부 기준) 전망치를 보여준다. 코로나 이전과 이후의 전망을 비교해보면 정부 지출이 크게 늘며 75%에 못 미치던 이 비율이 100%를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의 경우 올해 세 번의 추경으로 이 부채비율이 약 6%포인트가 높아져 44%에 근접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추경에 대한 비판 중 일부는 적절치 않아 보인다. 우선 3차 추경이 예상보다 낮은 세수를 보전하기 위한 세수결손 규모가 큰 추경이라는 비판이다. 경제가 예기치 못한 충격으로 나빠지면 세수가 예상을 하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또 3차 추경의 약 0.2% 규모인 예술 분야에 대한 지원(759억 원)에 대한 비판도 옹색해 보인다. 우리의 소득 수준을 감안하면 다양한 문화예술 분야에도 관심을 가질 만한데 여전히 수요 부족으로 예술작품 시장이 협소하여 여건이 열악하다. 사치품이라 여겨지기 때문에 경제위기의 충격이 더 클 것이다. 지원 분야인 벽화나 조형물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볼 수 있는 결과물을 낳는 사회적 투자여서 지원이 바람직하다. 다만 지원 대상 선정에 있어 공정성과 다양성이 담보되어야 할 것이다.
부채 규모의 증가 속도에 대한 지적은 더 강조되어야 한다. 한국의 부채비율이 지난 20년간 20% 아래에서 시작해 빠르게 오르고 있어 작금의 국가채무 증가가 이런 추세를 부추기지 않을까 걱정된다. 부채비율은 앞으로도 고령화 및 사회안전망 확충으로 추세적으로 더 늘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1년 사이에 부채비율이 5%포인트 느는 것에 익숙해지면 한국도 국가부채 불량국 이탈리아, 그리스, 중남미 국가들과 같은 처지가 되기 쉽다. 이번 재난지원금에 대한 긍정적 반응을 보며 새로운 현금지원 방안을 구상하는 정치인들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세계경제 부진 장기화, 특히 세계 교역량 회복이 지연되는 시나리오가 걱정이다.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국가 간 인적 흐름을 차단하는 조치가 퍼지며 영구적으로 낮아진 줄 알았던 국경 장벽이 부활했다. 국경 장벽은 물적 이동을 제한하는 무역장벽으로 쉽게 이어진다. 주요 수출 대상국의 무역장벽이 높아지면 수출이 생명줄인 한국의 기업들은 국내 생산을 줄이고 현지 생산을 늘릴 수밖에 없다. 11월 미국의 대선에서 민주당이 승리해도 미국의 보호무역 경향이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그동안 트럼프의 보호무역 조치로 외국 기업들의 미국 현지 생산을 늘리는 것을 정파 구분 없이 반기고 있다.
우리 기업들이 수출시장 현지에서 생산을 늘리면 국내 투자, 고용, 생산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일자리가 늘지 않고 소득 정체가 지속되면 정부 소득 지원에 대한 유권자들의 기대가 커질 것이다. 이런 기대를 외면하는 것은 집권당의 정치적인 자살행위가 될 것이다.
만약 우리의 채무비율이 미국 수준으로 높아지면 뭐가 문제일까. 국제 금융시장에서 미국 정부의 채권은 대표적인 안전자산이어서 이를 사려는 투자자들이 넘쳐난다. 그들에게 한국 정부 채권은 미국 국채에 비해 위험도가 높은 자산이다. 금리나 환차익과 같은 유인이 있어야 산다. 그러니 상황에 따라 채권 시장과 시중 금리가 불안해지기 쉽다. 금리가 급등하면 가계·기업·정부 모두 어려워진다.
미국의 채무비율 추세에서 보듯이 국가채무 비율이 늘기는 쉬워도 줄이기는 어렵다. 증가 속도를 조절하기 위해서는 평상시 가능한 한 재정 의존도를 낮추고 민간 부문을 활성화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