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사망 사건, 미 사회 만연한 인종·가치관 모순 터뜨려…투표 에너지로 바뀐다면 대선 판도 가를 수도
폭발의 계기는 백인 경찰의 과잉 진압에 사망한 비무장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였다. 1968년 암살된 흑인 인권 운동가 마틴 루서 킹 만큼의 인지도도 없는, 일반 시민의 죽음이 당시 이상의 항의 시위로 발전한 데는 인종 간 격차가 그 배경에 있다는 평가다.
미국 인구조사국에 따르면 2018년 기준 흑인 가구의 연소득(중간값)은 4만1400달러(약 4940만 원)로, 백인보다 2만5600 달러 낮았다. 이 격차는 통계를 시작한 1967년(2만600달러·2018년 가치로 환산한 값)을 넘어 사상 최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타격도 백인보다 흑인이 더 컸다. 인구 대비 고용 비율을 보면, 2월~5월 백인은 7.9%포인트 하락한 반면, 흑인은 9.8%포인트나 떨어졌다.
흑인들은 경제적 타격은 물론, 코로나19 감염 위험에도 백인보다 더 많이 노출돼 있다. 현장에 나오는 ‘최전선 노동자’가 상대적으로 더 많기 때문이다. 재택 근무가 가능한 흑인은 백인보다 약 10%포인트 더 적다. 반면 코로나19로 인한 흑인 사망자 수는 백인의 2배다.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흑인의 실업률은 지난 5월 16.8%를 기록했다. 지난 2월(5.8%)에 비해 3배가량 증가한 것이었다. 미국의 실업률은 지난 4월 14.7%, 5월 13.3%를 각각 기록했다. 최근 두 자릿수 실업률은 미국인들이 근래에 보지 못한 수치다. 하지만 흑인들에게는 그렇지 않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적했다. WSJ에 따르면 흑인의 실업률은 1974년 9월부터 1994년 11월까지, 그리고 2008년 7월부터 2015년 2월까지 10%를 넘었다.
실업률이 낮더라도 흑인들의 전반적인 경제 상황은 취약했다. 백인보다 직업의 안정성이 낮고, 재산도 적었기 때문이다. 저축 규모도 적어 위기에 대한 내성도 약하다. 미국경제정책연구소에 따르면 흑인 가구의 현금 저축액은 8762달러로, 백인(4만9529달러)의 20%에도 못 미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러한 인종 간 격차 문제가 이번 대선 판도를 좌우할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로 CNN방송이 지난 8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68%가 이번 대선에서 크게 중요시하는 요소로 ‘인종 문제’를 꼽았다. 인종 문제가 경제(77%), 의료 (69%)에 이어 이번 대선의 주요 쟁점으로 떠오른 것이다.
1940~1960년대 대선까지만 하더라도 흑인이 민주당 후보에 투표하는 비율은 60~80% 정도였다. 하지만 1960년대 민권운동을 경계로 거의 90%의 압도적인 비율을 기록하게 됐다. 취업 우대 정책을 추진하는 등 민주당이 소수자를 배려한 정책을 적극 추진했기 때문이다.
관건은 경합 주의 투표율이다. 미국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2016년 대선에서 흑인의 투표율은 59.6%를 기록했다. 이는 직전 대선 때보다 7%포인트 줄어든 수치이자 20년 만의 첫 감소였다. 백인보다는 5.7%포인트 낮았다. 이는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패한 요인이 됐다.
경합 지역 중 하나인 미시간주는 2016년 트럼프가 1만1000표 차이로 승리를 거머쥔 곳이다. 미시간주에서 흑인 유권자는 약 110만 명으로 추정된다. 흑인 투표율이 1%포인트만 올랐어도 두 후보는 박빙이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가 승리한 다른 경합 주 6곳에서도 흑인 투표율이 5%포인트 오르면 3개 주에서 역전했을 것이라는 추산이다.
전문가들은 흑인 사망 사건에 대한 분노가 투표로 향하는 에너지로 바뀐다면 이번 대선 판세는 완전히 뒤집힐 수 있다고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