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이 고(故) 노회찬 전 의원이 3년 전 발의한 ‘기업 살인법’을 당 제1호 법안으로 발의하면서 경영계의 반발이 예상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규제 강화 움직임 속에서 중대 산업재해의 처벌을 기업 대표에게 묻는 것은 재해 예방으로 이어질지 의문이란 입장이다.
15일 국회와 정부에 따르면 정의당은 21대 국회 1호 법안으로 ‘중대 재해에 대한 기업과 책임자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을 11일 발의했다. 노 전 의원이 20대 국회 당시 발의한 특별법에 근거한 이 법안은 중대 재해 책임자에게 대폭 강화된 처벌을 규정한다. 고용노동부령에 따라 사망자 1명 이상 또는 부상자 10명 이상 사고 등에 징역 ‘3년 이상’이란 하한선을 규정하고 안전관리 책임 주체는 ‘사업주와 경영책임자’로 명시했다. 징역 최고형은 15년이며, 벌금은 5000만 원 이상~10억 원 이하다.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도 규정했다. 사업주가 고의 또는 중대과실로 안전의무를 위반해 중대 재해에 이르게 한 경우, 손해액의 3배 이상~10배 이하를 물게 했다.
이와 관련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3일 대법원 산하 양형위원회를 찾고, 양형위원장인 김영란 전 대법관에게 개정 산업안전보건법 양형기준에 대한 협조를 요청했다. 개정 산안법은 사업주·도급인이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위반해 노동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 최대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 벌금을 부과하도록 하고 있다.
경영계는 처벌 강화가 산재 감소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사업주가 기업경영을 총괄하나, 안전·보건 조치와 같은 기술적·실무적인 사항의 실행 여부까지 일일이 확인하는 것은 한계가 있고, 예기치 않은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는 게 현장이란 설명이다. 이런 상황에서 안전사고 책임을 사업주에게 전적으로 묻도록 하는 것은 과잉 입법이란 우려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개정 산안법이 시행에 들어간 지 반년도 안 돼 처벌 강화를 다시 거론하는 것은 산재 감소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처벌 강화가 아니라 사고예방 조치가 현장에서 제대로 이뤄지는지 관리 감독하는 방안이 더욱 절실하다”고 밝혔다.
한 경영계 관계자는 “사망사고 예방과 사업주의 경각심을 높이기 위한 취지라고 해도 과도하게 처벌 위주”라며 “기업살인법은 형사처벌 수위를 높이는 데만 초점이 맞춰져 있어 사고 예방이 아닌 범법자 양산에 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도 처벌보다는 예방·지원 위주의 정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노민선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나치게 처벌 위주로 법이 흐르다 보면, 사업주의 기업가 정신을 위축시킬 수 있다”며 “지금과 같은 경제 위기를 극복하려면 기업의 혁신 잠재력을 높이고, 기업가 정신을 고취하는 게 중요하다. 처벌보다 예방을 돕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