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도 수소융합얼라이언스추진단 회장(서울대 객원교수)
얼마 전 기사에서 우리나라 조선소들이 카타르와 LNG 선박 건조를 위한 도크 확보 계약을 체결하였다고 한다. 이에 따른 LNG 선박 건조 물량이 최대 100여 척에 이르고 금액도 23조 원 이상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하니 후속 계약까지 성공적으로 이뤄지길 바란다. 그동안 무리한 해양플랜트 건조 후유증과 세계적 선박 발주 물량의 감소가 지속되는 가운데 중국의 경쟁력 강화로 어려움을 겪던 우리 조선소에 단비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나라는 80년대 들어 천연가스를 도입하기 위해 인도네시아와의 협력에 착수했다. 86년부터 국내에 들여와 가정용 취사연료와 발전소, 그리고 버스의 연료로 사용하고 있다. 수입국 입장에서 천연가스를 도입하기 위해서 파이프라인이 없으면 액화설비와 LNG를 운송할 특수선박이 필요하다. 한편 수출하는 인도네시아는 수입국의 수요가 장기 계약으로 확보되어야 비로소 가스전 개발 사업을 착수한다. 즉 가스전의 개발과 액화설비, LNG 운반선의 건조, 수요자와의 장기 인도 계약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이때 우리 조선소는 우리가 쓸 LNG 선박을 건조하면서 자연스레 선박 건조 기술을 확보했다.
2000년대 들어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이산화탄소 배출이 상대적으로 적은 천연가스 수요가 세계적으로 늘어나면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현대, 대우, 삼성, 한진 등 조선소는 LNG선을 계속 건조하였다. 지난 3년간 세계 선사가 발주한 124척 중 118척을 수주할 정도로 독보적인 위치를 점했다. 후발 주자인 중국이 탱커, 컨테이너 등 상선 분야에서 우리를 추격하는 동안에도 LNG 선박에서는 세계 시장을 휩쓸었다.
그런데 카타르가 우리와 도크 사용 계약을 체결하기 전에 중국과 유사한 합의를 하였다는 보도는 우려를 낳는다. 중국이 LNG 선박 건조를 대량으로 하면 자연스레 기술력을 확보하게 되어 우리 조선소를 위협하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과거에 우리 조선소들이 이러한 상황을 우려하여 유럽 조선소들이 경쟁력을 갖는 크루즈선 건조에 관심을 가졌지만 여전히 그 격차가 크다. 또한, 원유나 가스를 생산하여 저장, 처리하는 해양플랜트 수주를 하였지만 원천기술이 부족한 가운데 턴키 방식의 수주를 한 결과 큰 손실을 겪은 아픔이 있다. 국제 원유가격이 급등할 때 앞다퉈 시추 설비 발주를 하였던 석유회사들이 유가가 급락하면서 이러저런 이유로 인수를 거부하자, 원천 기술을 가지고 핵심 부품을 공급한 유럽의 기자재 업체들은 전혀 손실 없이 대금을 회수하였던 데 반해 우리 조선소들은 그 손실을 고스란히 떠안았다.
이처럼 이른 시일 내에 원천 기술을 확보하여 중국과 기술 격차를 벌리거나 새로운 먹거리를 찾지 못하면 우리나라의 조선산업은 항상 위험 속에서 살 수밖에 없다. 70년대 우리에게 기술을 전수해 주던 유럽의 조선소들이 대부분 구조조정을 할 수밖에 없었던 역사가 우리라고 예외가 될 수 없다. 더구나, 산업 인력의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새로운 기술 인력이 유입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 조선산업이 기반을 잃어가는 것은 시간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편, 카타르가 발주할 선박에는 우리나라가 사용할 미래 LNG 수요와 연계된 것도 있을 것이다. 최근에 발표된 9차 전력수급 계획안에 따르면 2034년까지 석탄과 원전 비중을 축소하고 가스와 신재생 발전의 비중을 대폭 높이는 방향으로 에너지 전환이 추진될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해외 수입에 대부분 의존해왔던 가스터빈의 국산화도 획기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 한다. 사실 지금까지 우리나라가 늘어나는 전력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원자력과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을 하면서 이들 설비의 기술 자립을 추진했던 노력에 비하면 가스터빈의 국산화에는 소홀했던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된 데에는 가스터빈 제조 시장이 세계적 몇몇 기업에 의해 독과점 시장으로 운영되어 기술 이전에 인색했던 이유가 있었다. 또한 가스 발전소 건설이 원전이나 석탄화력에 비해 장기적 계획에 의존하기보다는 그때그때 수급 상황을 고려하여 보조적으로 이뤄진 부분도 있다. 이젠 가스터빈 국산화가 에너지와 산업을 연계한 전략으로 성공적으로 추진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