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영환경 악화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쇼크로 기업들의 자산 매각이 줄잇는 가운데, 자산매각 시장에서 사모펀드(PEF)의 역할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경영 환경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기업들은 보수적인 경영정책을 펼치고 있는 데 반해, 풍부한 유동성을 가진 사모펀드는 적극적인 투자활동을 지속할 것이라는 기대에서다.
23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올해 국내 기업들의 영업현금흐름의 감소폭은 2000년 이후 가장 클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삼성전자를 제외한 상장사(622개)의 1분기 영업활동현금 유입은 16조8000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3.0%(2조5000억 원) 줄어들었다. 투자활동은 전년 대비 26.4%(5조2000억 원) 줄어들었으나, 차입, 증자 등 재무활동을 통한 자금조달은 전년대비 23.3%(2조1000억 원)늘었다.
기업들은 자본 시장을 통한 조달 확대 뿐만 아니라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확산 재발 등 최악의 상황을 대비한 리스크 대응을 위해 비핵심사업 및 보유 부동산 매각에 나서고 있다.
유형자산매각 사례로는 현대제철, 한국타이어, 이마트, 한진그룹, 아모레퍼시픽, LG하우시스, 한국GM, 쌍용차 등이 있다. 현대제철은 3월 서초구 잠원동 사옥을 중견 시행사에 483억 원에 매각했으며, 한국타이어는 부산 영도 물류센터 부지 등 국내 유휴 부지 매각에 나섰다. 이마트는 3월 서울 마곡지구 부지를 8158억 원에 매각해 현금을 확보했고, 아모레퍼시픽도 논현동 성암빌딩을 1520억 원에 매각했다. LG하우시스는 630억 원 규모의 울산 신정 사택 부지를 처분했다. 한진그룹은 송현동 부지와 유휴자산 매각을 진행 중이다. 한국GM은 인천부평공장 인근 물류센터 부지 매각에 나섰으며, 쌍용차는 최근 서울 구로구 서비스센터와 부산 물류센터 등 비핵심 자산을 매각했다.
LG전자, LG상사, LG화학, CJ E&M 등은 주식을 처분해 현금을 확보했다. LG그룹 3사인 LG전자, LG상사, LG화학 등은 중국법인인 LG홀딩스(HK) 지분을 전량 매각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총 예상 매각가는 1조3500억 원으로 추산된다. CJ E&M은 자회사 스튜디오드레곤 지분을 블록딜(시간외 대량매매)로 1661억 원에 처분했다.
이밖에 현대HCN, 해태제과, 두산그룹 등은 사업구조조정을 단행했다. 해태제과는 자회사인 해태아이스크림을 빙그레에 매각했으며, 현대HCN은 케이블TV 사업 매각을 진행 중이다. 두산그룹은 경영 정상화를 위해 두산솔루스, 두산인프라코어, 두산모트롤, 두산건설 등을 비롯해 두산타워, 클럽모우CC 등 주력 계열사와 비핵심 자산 매각에 나선 상황이다.
채권자 주도 하에 비핵심자산 매각과 인수합병(M&A)이 활발해지면서 기업 구조조정 시장에서 ‘큰손’ 역할을 하는 경영참여형 사모펀드의 영향력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최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사모펀드 동향에 따르면 경영참여형 사모펀드의 지난해 투자액은 16조 원으로 직전 3년 평균인 11조7000억 원을 뛰어넘었다. 이중 국내 기업 비중은 84%를 기록했다.
실제 M&A 시장에 나온 기업들의 공개 매각에서도 사모펀드들의 활약은 돋보인다. 인수 뒤 비용절감이나 사업구조를 재편해 기업의 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이뤄낸 사례들도 많다. 사모펀드가 앞으로 진행될 산업 재편과 기업 구조조정 등에서 선순환의 매개체가 될것이라는 기대가 나오는 이유다.
한광열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경영참여형 사모펀드는 장기적인 관점의 투자 확대와 함께 투자자의 선호도가 높아질 것”이라며 “막대한 자금력을 보유한 사모펀드들은 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나온 매물을 적극적으로 매입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