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 말처럼 ‘똑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미친 짓
중학생으로 보이는 앳된 학생이 아디다스 운동복을 이리저리 살피며 주인에게 물었다. “아저씨, 이거 짝퉁(모조품)이죠?”
연륜이 깊어 보이는 사장님이 짧게 답했다. “진짜라고 믿으면 진짜야.”
학생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에이~ 친구들은 딱 보면 짝퉁인지 알아요. 싸게 주세요.”
이 학생의 타박 어린 흥정을 되받아치는 사장님의 대답이 걸작이다.
“그런 믿음이 약한 친구들하고는 놀지 마. 진짜라고 믿으면 다 진짜야. 여기 정찰제야.”
최근 유행하고 있는 ‘정신승리’라는 표현에 딱 어울리는 상술이지 싶다.
정신승리는 ‘경기나 경합에서 겨루어 패배하였으나 자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자신은 지지 않았다고 정당화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현 정부의 모순적인 경제정책 등을 비꼬는 표현으로 쓰이고 있는데 일본은 일찌감치 20여 년 전부터 ‘정신승리’를 해오고 있다.
안베 유키오 교수의 저서 ‘일본경제 30년사’에 따르면 일본 경제가 버블로 차오르던 1985년부터 1990년까지 증시 시가총액은 567조 엔, 지가는 1162조 엔 폭증했다. 매년 일본의 국내총생산(GDP)만큼 자산가격이 오르는 누가 봐도 ‘기형경제’였다.
그러나 1989년 일본 정부는 연차경제보고서에서 이렇게 밝힌다. “대체로 (주가는) 기업의 자산가치를 평가한 수준이고 (지가는) 도쿄권 경제기능 집중에 따른 기대치 상승이다.” 버블 가능성을 일축한 일본 정부의 정신승리다.
일본 국민의 정신승리도 만만치 않다.
일본 국세청 ‘민간급여실태통계조사’에 따르면 2017년 1인당 평균급여는 432만 엔이다. 이는 20년 전인 1997년보다 오히려 35만엔 낮은 수준이다. 그리고 일본 기준금리는 롤러코스터를 거쳐 1995년 9월 연 0.5%로 떨어진 후 최근 마이너스 금리를 달리고 있는데 일본 국민의 은행 사랑은 꿈쩍하지 않는다.
2000년 3월 말 가계금융 자산 중 현금과 예금 비중이 54%였는데, 2019년 3월 말에도 53%를 차지하고 있다. 실질 급여가 떨어졌고 은행에 여유 자금을 예치해봐야 사실상 손해인데도 말이다. 안전성에 올인하는 일본국민의 정신승리 결과물이다.
‘일본에 다시는 지지 않겠다’라는 문재인 정부는 ‘정신승리’ 측면에서 성과를 톡톡히 내고 있다.
현재 정부와 여권은 국가채무비율이 60%를 넘어도 문제없으며 재정 건전성도 탄탄하다고 주장, 아니 굳건히 믿고 있다. 그러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미국, 일본, 유로화를 쓰는 유럽국가 등 기축통화를 사용하지 않는 국가 중 채무비율이 50%를 넘는 나라는 드물다. 특히 고령사회에 진입하던 연도에 유럽국가들의 국가부채비율을 보면 영국 44.4%, 프랑스 21.2%, 독일 18.5%였다. 문재인 정부 말기가 되면 우리나라 국가부채비율이 50%를 넘을 것으로 예상하는 데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를 달리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이 수치가 절대 낮지 않다. 이를 모를 리 없는 정부와 여권의 태도는 정신승리 외에 다른 말로 설명되지 않는다.
더 걱정스러운 점은 일반 경제정책조차도 ‘정신승리’에 토대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대기업을 아무리 규제하고 압박해도 수익을 낼 수 있고 세금을 더 부담할 수 있으며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기업 학대’이자 ‘신념오류’이다. 부동산 가격을 규제로 잡을 수 있다는 것 역시 일종의 ‘사이비 종교’다. 20차례가 넘는 고강도 규제를 했어도 잡지 못한 부동산 시장을 더 센 규제로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은 자신에게 유리한 장면만 기억하는 ‘회상성 조작’이다. 규제 초기 잠깐 주춤했던 아파트 가격만 머리에 남아있는 셈이다. 아인슈타인은 ‘미친 짓’이란 ‘똑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일’이라고 정의했다. 하지만 누가 뭐라 해도 이 정부는 바뀌지 않을 것 같다. 신념과 믿음만으로 경제가 부활하는 기적을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