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않고, 과감하게 도전하지 않은 것이 실패다.”
최근 구광모(42) LG그룹 회장이 LG사이언스파크를 방문해 남긴 말이다. 4대 그룹 총수 중 가장 젊은 구 회장은 취임한 이후 2년간 ‘선택과 집중’ 전략을 통해 LG그룹의 변화를 이끌어왔다. 성장 가능성이 낮은 분야는 과감히 정리하되, 미래 먹거리를 위한 투자와 인수 활동은 크게 늘렸다. 이러한 전략을 바탕으로 LG그룹은 최근 인수·합병(M&A) 시장에서 ‘큰 손’으로 떠올랐다.
◇보수 이미지 벗고 M&A 큰손으로 부상= 그간 재계에서 LG는 M&A 분야에서만큼은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회사의 사세를 키우기 위해 외부 기업을 인수하는 것보다는 일반 투자나 합작형태를 택했다. 이는 수천억, 조 단위 M&A 성장전략을 구사한 SK나 롯데 등 기업집단과는 차별되는 부분이었다.
대표적인 예가 LG디스플레이다. LG는 1999년 5월 네덜란드 필립스사로부터 당시 민간기업 사상 최대 규모인 16억 달러의 외자 유치를 하고 합작법인 LG필립스LCD를 출범시켰다. 신규투자로 인한 리스크를 최소화하되 기술력과 시장지배력을 동시에 가져가기 위한 전략이었다. 이후 LG는 필립스와 결별, 2008년 단독법인인 LG디스플레이를 출범했다. 하지만 이러한 전략은 리스크가 작은 대신 급변하는 글로벌 산업 환경에서는 대처가 늦는 형태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러한 LG의 보수적인 성장전략에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한 것은 2015년 말부터다. 그룹의 주력사 중 하나인 LG화학을 시작으로 계열사들의 굵직한 M&A가 잇달아 진행됐다. LG화학은 2016년 국내 최대 농자재 기업 동부팜한농(현 팜한농) 지분 100%를 4245억 원에 인수하며 스타트를 끊었다. LG화학이 단행한 역대 M&A 가운데 가장 큰 규모였다. 동부팜한농 인수는 LG화학은 화학·배터리 사업에 이어 바이오 분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는 계기가 됐다. 이후 LG화학은 2018년 미국 자동차 접착제 회사 유니실을 비롯해 2019년에는 미국 듀폰으로부터 솔루블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재료 기술을 인수했다.
LG생활건강도 그룹 내 주요 M&A 플레이어로 활동하며 큰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LG생활건강은 그룹이 전반적으로 M&A에 적극적으로 변화하기 훨씬 이전인 2005년 차석용 부회장이 취임 이후부터 활발한 기업 인수로 사세를 확장하고 있다. 2005년 차 부회장이 취임한 후 14년 동안 LG생활건강은 더페이스샵, CNP코스메틱 등 국내 화장품 브랜드뿐만 아니라 미국 화장품 브랜드 뉴에이본, 보습크림으로 유명한 피지오겔의 아시아와 북미 사업권을 인수했다. 화장품뿐만 아니라 2007년에는 코카콜라음료를 시작으로 해태음료와 한국음료, 영진약품드링크 사업 등 음료 업체를 인수했다. 지난 15년간 회사가 인수한 국내 화장품과 음료업체만 24곳에 달한다.
◇주력 계열사 ‘선택과 집중’ M&A 전략=대형 M&A에 보수적이었던 LG가 달라졌다는 평가를 받게 된 계기는 2018년 오스트리아 전장 업체 ZKW 인수였다. 투입된 자금만 약 1조4440억 원에 달한다. 신성장동력 확보와 주력 계열사와의 시너지 효과를 위한 베팅이었다. ZKW는 헤드램프 등 차량용 조명 전문 생산업체로 BMW, 메르세데스-벤츠, 아우디, 폭스바겐, 포드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를 주요 고객사로 확보하고 있다.
LG그룹은 구 회장 취임 이후에는 선택과 집중을 통한 사업구조 재편과 미래사업 육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업성이 떨어지거나 주력 사업이 아닌 것은 과감하게 정리하는 동시에 신사업 관련 투자에는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실제로 LG화학은 최근 중국 업체들의 저가 공세로 수익성이 악화한 LCD(액정표시장치) 편광판 사업을 중국업체에 매각했고, 이보다 앞서 LG전자는 수처리 자회사 하이엔텍·히타치워터솔루션와 수소연료 전지 회사 LG퓨얼셀시스템즈를 매각했다. LG유플러스는 전자결제(PG)사업을 토스에 넘겼다. 일감 몰아주기 의혹을 받았던 판토스 지분을 처분하는 한편 서브원 지분도 매각했다.
증권가에서는 올 2분기 말 LG의 보유 순현금이 1조7000억 원으로 역대 최고 수준이 될 것으로 전망하면서 LG그룹이 대규모 M&A를 진행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구 회장이 미래 먹거리로 주목하는 전기차 배터리, 전장, OLED, AI, 로봇 등 미래 먹거리 분야에서 M&A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미래사업 본격 겨냥, LG테크놀로지벤처스 주목= 재계에서는 LG그룹의 스타트업 투자가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 중심에는 LG그룹이 미국 실리콘밸리에 설립한 기업벤처캐피탈(CVC) ‘LG테크놀로지벤처스’가 있다. LG테크놀로지벤처스는 구 회장이 지난 2018년 6월 취임한 직후 LG전자를 필두로 LG디스플레이·LG디스플레이·LG화학·LG유플러스 등 LG그룹 주력 계열사가 약 5000억 원을 출자해 만들어졌다. 이미 모빌리티 관련 스타트업 ‘라이드셀’, 가상현실(VR) 스타트업 ‘어메이즈브이알’, 차세대 리튬 이온 배터리·광학필름 관련 스타트업 ‘옵토닷’ 등에 대한 투자가 이뤄졌다. 이와 관련해 일각에서는 정부가 CVC 규제 완화 움직임에 따라 LG그룹이 국내에 CVC를 설립, 국내 벤처기업 투자에 나설 가능성에도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