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최숙현 사태 통해 본 체육계 만연한 폭행‧폭언, 언제쯤 바뀔까

입력 2020-07-03 16:53수정 2020-07-03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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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식 행태 반복…대한체육회 "선제적 처벌하겠다"

(출처=게티이미지뱅크)

신발과 손바닥으로 뺨을 맞았다. 체중조절에 실패했다는 이유로 사흘을 굶었다. 탄산음료를 시킨 뒤 20만 원어치의 빵을 먹기도 했다. 폭행과 폭언 사실을 대한체육회 스포츠인권센터에 알렸고, 대한철인3종협회에도 진정을 넣었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그 사람들 죄를 밝혀줘'라고 말하며 스스로 세상을 등진 트라이애슬론(철인 3종 경기) 유망주 고(故) 최숙현 선수의 이야기다. 최숙현 선수가 지목한 사람들은 감독과 팀닥터, 동료 선배들이다. 이전에도 많은 운동선수가 폭행을 당했지만 달라진 게 없는 현실. 체육인의 인권을 책임져야 할 대한체육회와 최숙현 선수의 소속팀인 경주시체육회는 일이 터지고 나서야 철저한 조사를 공언했다.

(사진제공=고 최숙현 선수 가족)

◇폭행·폭언·성추문…이미 많은 운동선수가 피해를 봤다

체육계에서 젊은 운동선수들이 각종 가혹 행위를 당한 것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부모가 자녀를 때려도 조사받는 시대지만 여전히 많은 운동선수가 폭력에 노출돼 있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가 초·중·고교 선수 약 6만 명을 대상으로 인권실태를 점검한 결과 8440명(14.7%)이 신체폭력을 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2212명(4%)은 성폭력을 당했다고 응답했다. 심지어 초등학생도 포함됐다.

다르게 보면 초·중·고교 학생의 폭행 피해 사실은 놀랍지가 않다. 대중에게 이름이 잘 알려진 스포츠 스타마저 가해자나 피해자가 되는 일이 있어서다. 역도 금메달리스트 사재혁은 2015년 12월, 춘천의 한 술집에서 후배를 폭행했다. 피해자는 전치 6주의 진단을 받아 병원에 입원했고, 사재혁은 '선수 자격정지 10년' 중징계를 받고 역도계에서 퇴출당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금메달리스트 이승훈도 후배 선수를 폭행해 출전정지 징계를 받았다. 그는 2011년과 2013년, 2016년 해외 대회 참가 중 후배 선수 2명에게 폭행과 가혹 행위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쇼트트랙 금메달리스트 심석희 선수는 당시 대표팀 코치였던 조재범에게 폭행을 당하고 선수촌을 이탈했다. 심석희는 어린 시절부터 조재범으로부터 상습적인 폭행과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조재범은 폭행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받고 복역 중이다. 조재범은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체육인'이니까 강하게 성장해야"…그릇된 인식

비극이 반복되는 데는 잘못된 신념이 자리하고 있다. '성적을 위해서', '체육인이니까'라는 생각이 유망주를 폭력의 늪으로 빠뜨린다.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서라면 일부에서 자행되는 폭력과 폭언이 용인되는 것도 문제다.

중학교 때까지 축구부에서 생활했던 김민재(30) 씨는 "코치가 뜻대로 공을 주지 않았다며 뺨을 때렸다"고 말했다. 철저한 위계 속, 지도자를 중심으로 돌아가던 당시 축구부에서 지도자의 뜻이 곧 전략이었던 것. 김민재 씨는 "코치들이 질서나 체계를 잡는다고 폭행·폭언이 만연했다"라며 "지도과정에서 체벌을 당연히 여겼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새벽에 라면을 끓이고, 때로 머리를 박는 건 예삿일"이라고 덧붙였다.

태권도계에 몸담았던 이건(30·가명) 씨 역시 체육인이라면 때리고 맞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고 지적했다. 이 씨는 향후 태권도 일을 할 수 있다는 이유로 실명을 공개하기 어렵다고 했다. '내부고발자'로 인식돼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 탓이다. 그는 "성과를 내고 엘리트를 만들어 내는 게 목적이다 보니 성적 지상주의로 가는 것 같다"라며 "결과를 만들기 위해서 두들겨 패는 것도 정당화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연합뉴스)

◇한발 늦은 대처…대한체육회 "선제적 처벌"

대한체육회는 2일 성명을 내고 최숙현 선수 사건과 관련한 엄중한 조처를 약속했다. 하지만 폭력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안일하게 여기는 대목이 엿보일 뿐만 아니라 이미 선수가 세상을 떠난 뒤 발표한 조처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대한체육회는 이전에도 폭행을 가벼운 일로 여겼다. 2017년에는 상습폭행으로 물의를 일으킨 김소희 전 쇼트트랙 대표팀 코치를 대한체육회 여성체육위원회 위원으로 위촉했다. 폭행 사건의 가해자가 여성 체육인의 권익 보호를 위한 일에 참여한 것. 이러한 인식 탓에 최숙현 선수가 피해 사실을 알렸지만, 보호 조처가 이뤄지지 않았다.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들과 최숙현 선수가 분리되지 않았으며 '경찰 조사가 진행 중인 사안'이라는 이유로 손을 놓고 있었다. 경주시청과 경북체육회도 마찬가지다.

최숙현 선수의 극단적 선택으로 논란이 커지자 대한체육회는 뒤늦게 대안을 마련했다. 대한체육회는 "스포츠 폭력·성폭력에 대해 조사나 수사 중이라도 즉시 자격정지·제명 등 선제적 처벌로 강력한 철퇴를 내리겠다"라며 "무엇보다 강력한 발본색원으로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지 않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언제까지 체육인이 폭행을 당할지, 대한체육회와 산하기관이 적극적으로 대처할지 지켜봐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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