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새에 걸친 마라톤협상 끝에 타결…3900억 유로는 보조금·3600억 유로는 저리 대출로 제공
정상들은 17일부터 경제회복기금 협상을 벌였다. 네덜란드와 오스트리아, 스웨덴, 덴마크 등 재정적 규율을 중시하는 이른바 ‘검소한 4개국(Frugal Four)’이 보조금 형식의 지원에 반발해 협상이 진통을 겪었다. 그러나 정상들이 보조금과 대출 비율을 조정하면서 합의점을 찾은 끝에 마침내 협상을 타결, EU의 결속을 과시했다.
경제회복기금 조성에 적극적으로 나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27개 회원국의 만장일치 승인을 이끌어냈다. 마크롱 대통령은 협상 타결 후 트위터에 “이날은 유럽에 있어서 역사적인 날”이라고 기뻐했다.
이 기금은 상환 의무가 없는 3900억 유로의 보조금과 저리 대출로 제공되는 3600억 유로 자금으로 나뉜다. 당초 EU 집행위원회(EC)는 5000억 유로의 보조금을 제안했지만 네덜란드 등의 반발로 그 규모가 축소됐다.
정상들은 또 2021~27년까지의 1조 유로 이상의 중기 예산안에도 합의했다. 유럽 회원국 의회의 승인을 거쳐 내년부터 자금 집행이 시작될 예정이다.
회복기금을 통해 코로나19 피해가 큰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 남유럽을 중심으로 지원이 이뤄진다. 코로나19의 유럽 첫 진원지인 이탈리아는 약 820억 유로의 보조금과 1270억 유로에 달하는 저리 대출을 받아 회복기금의 최대 수혜국이 될 전망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탈리아, 스페인과 그리스 등 이미 높은 부채에 허덕이는 국가들이 빚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불어날 것이라는 우려에서 벗어나 새해에도 경기회복을 위해 적극적으로 정부 지출을 늘릴 수 있게 됐다고 이번 협상 타결의 의의를 설명했다.
또 블룸버그는 기금의 약 3분의 1이 ‘기후변화와의 전쟁’에 배정됐으며, 이는 1조 유로 규모의 7년 예산안과 함께 역사상 가장 큰 ‘녹색 부양책 패키지(Green Stimulus Package)’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모든 지출은 파리기후변화협약에서 약속한 온실가스 배출 감축 목표와 부합해야 한다.
기금에 필요한 재원은 EC가 채권을 발행, 전액을 시장에서 조달한다. EU가 이렇게 대규모로 공동 채권을 발행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EU의 재정통합에도 한 걸음 더 다가서게 됐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했다.
10만 명 이상의 유럽인이 코로나19로 사망하고 경제를 재건해야 할 어려운 과제에 직면한 지금 EU는 의미 있는 결속을 보여줘 시장 안정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블룸버그는 호평했다.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이번 합의는 유럽의 여정에 있어서 중추적인 순간이 될 것”이라며 “‘행동의 힘(Force of Action)’이라는 구체적인 신호를 보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