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철현 부국장 겸 부동산부장
역대급 세금 폭탄이 현실화됐다. 정부는 7·10 부동산 대책과 ‘2020 세법 개정안’을 통해 다주택자가 집을 사고(취득세), 보유하고(종합부동산세), 파는(양도소득세) 모든 단계에서 세금을 '억' 소리 나게 올리기로 했다.
종부세는 내년부터 최고세율이 6%(현행 3.2%)로 오른다. 양도세 중과도 핵폭탄급이다. 내년 6월부터 집을 파는 다주택자는 최고 75%의 양도세를 물어야 한다. 취득세율도 껑충 뛴다. 2주택자는 현행 1~3%에서 8%로, 3주택 이상 보유자는 2~3%에서 12%로 높아진다. 말 그대로 ‘세금 폭탄’이다.
정부는 양도세 중과세 시행 시기를 내년 6월로 늦춰 ‘출구’를 열어뒀다지만 지금도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율이 최고 62%에 달해 매물이 얼마나 많이 나올지는 의문이다. 결국 주택 취득·보유·양도에 이르는 모든 길목에 세금 폭탄을 투하함으로써 다주택자에게 견디기 힘든 고통을 안겨주겠다는 정부와 여당의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부동산 정책만큼은 ‘여기가 북한이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더 확실하게 다주택자를 때려잡아야 한다”라는 한 여당 의원 발언도 허투루 나온 게 아닌 듯하다.
한국의 부동산 관련 세 부담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한국의 보유세(재산세ㆍ종부세) 비중은 2018년 기준 0.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1%)보다 조금 낮은 편이고, 거래세(취득세ㆍ양도세) 비중은 1.5%로 OECD 평균(0.4)보다 4배가량 높다. 주택 보유 수가 많다고 해서 세금을 높게 매기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출구가 필요하다. 보유세를 올리면 거래세는 낮춰야 한다. 그래야 퇴로가 열려 매물이 나오고 집값도 잡힌다. 집을 가지고 있어도 중과세, 집을 팔려고 해도 중과세하는 건 보편적 부동산 과세 원칙에도 맞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도 신년 기자회견에서 “보유세를 강화하고 거래세는 완화하는 게 맞는 방향”이라고 하지 않았나. 정부와 여당이 이런 정책 기조를 반년 만에 뒤집은 것은 이율배반이다. 이쯤 되면 다주택자 옥죄기가 집값 안정보다는 세수 확보(증세)에 목적을 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들만도 하다.
막가파식 정책에는 뒤탈이 따르게 마련이다. 보유세와 거래세가 동시에 오르면 매물 잠김과 그에 따른 거래 절벽 현상이 심해질 수 있다. 증여를 통한 ‘부의 대물림’도 가속화할 게 뻔하다. 늘어난 세금이 전월세 가격에 전가될 가능성도 크다. 실제로 집주인들이 세금 인상분을 세입자에게 떠넘기고,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는 사례가 부쩍 늘고 있다고 한다. 다주택자 규제와 세금 폭탄에 따른 피해를 집 없는 서민들이 고스란히 떠안는 셈이다. 규제의 역설이다.
이런데도 정부는 다주택자를 집값 상승의 주범으로 몰아 복날 개 패듯 한다. 과연 다주택자는 집값 급등 원흉이고 몹쓸 짓을 한 죄인인가. 그렇지 않다. 불법을 저지른 적도 없고 내야 할 세금도 꼬박꼬박 냈다면 특별히 시비의 대상이 돼야 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다주택자는 민간부문의 임대주택 공급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들은 대부분 보유한 한 채에 실거주하고, 다른 집은 세를 놓는다.
주택 보급률이 아무리 높아져도 여러 가지 사정상 집을 살 수 없는 계층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선진국도 전체 가구 수의 30%가량은 무주택자다. 한국은 공공 임대주택의 비중이 전체 주택 재고의 7%에 불과할 정도로 낮아 민간에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다. 무주택자에게 전세나 월세를 공급하는 가장 중요한 주체가 바로 정부가 징벌적 과세로 때려잡으려고 하는 다주택자인 것이다.
다주택자 때리기가 무주택 서민의 불만을 달래는 정치적 해법은 될지언정 효율적인 집값 안정 대책은 될 수 없다. 정치에 물든 부동산 정책은 시장만 멍들게 할 뿐이다. 스무 차례 넘게 쏟아낸 대책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충분히 경험했다.
지금 꼭 필요한 건 편 가르기나 분노 달래기가 아니라 "내 집을 장만할 수 있다"는 희망 불어넣기와 서민의 주거 안정이다. 정부는 더 이상 국민을 상대로 '세금 몽니'를 부리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