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 64M D램 시제품 개발 기념일' 인터뷰에서 밝혀
권오현 삼성전자 상임고문(전 종합기술원 회장)이 삼성의 기술 초격차 비결은 오너의 과감한 결단이라고 밝혔다.
권 고문은 28일 세계 최초 64메가(M) D램 시제품 개발일인 1992년 8월 1일을 기념하는 사내방송 인터뷰에서 "향후 위기를 타개해나갈 때도 오너의 결단과 리더십이 중요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삼성전자는 64M D램 세계 최초 개발을 필두로 1994년 256M D램, 1996년 1Gb D램을 연이어 세계 최초로 개발하는데 성공하며 반도체 시장에서 주도적인 위치로 올라섰다. 권 고문은 당시 개발팀장을 맡아 이를 주도했다.
권 고문은 개발 당시를 회상하며 “당시 삼성이 반도체 사업을 한다는 자체가 넌센스(Nonsense) 같은 일이었다”며 "고(故) 이병철 회장께서 반도체 사업을 하겠다고 선언하시고, 이후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건희 회장이 지속적인 투자를 해서 동력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반도체 사업에서 삼성전자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워낙 기술 발전 속도가 빠르고 투자 규모가 커서 위험 부담이 큰 비즈니스지만, 위험한 순간에 고 이병철 회장과 이건희 회장의 의사결정이 성공을 가능하게 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이병철 선대 회장, 이건희 회장, 이재용 부회장으로 이어지는 동안 삼성은 위기에도 과감한 투자를 중단하지 않고 오히려 몰아붙였다. 이를 통해 초격차를 유지하며 글로벌 톱 기업으로 올라섰다.
이병철 선대 회장은 1986년 삼성전자 반도체 세 번째 생산라인 착공을 결정했다. 당시 전 세계는 오일 파동으로 어려움을 겪고 D램 시장의 불황도 지속됐던 시기다. 회사 안팎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이 결정은 1988년 D램 시장이 대호황기를 맞으며 재평가를 받았다.
이건희 회장은 2008년 4분기 충격적인 7400억 원의 영업적자를 받아든 뒤 이듬해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다. 2009년 반도체 부문에 당시로서는 역대 최대인 7조 원 이상의 대규모 투자에 나섰다.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제조사들의 출혈 경쟁으로 치킨게임이 벌어졌던 2012년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 반도체사업 영업이익도 2년 새 반 토막이 났다. 당시 2위 업체였던 도시바는 30% 감산을 단행했다. 이때 이건희 회장은 뜻밖의 결정을 내렸다. 3월에 중국 시안 공장 투자를 발표했고, 7월 경기도 평택에 100조 원을 투입,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공장을 세우기로 했다.
불확실성이 고조되면서 모두가 움츠릴 때 과감한 결단을 내린 삼성이 ‘반도체 치킨게임’ 승자의 독식 혜택을 누리고 있는 셈이다.
권 고문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아 지향해야 할 점으로 최고경영자층의 강력한 리더십과 임직원들의 헌신적인 노력을 꼽았다. 그는 이재용 부회장이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1위에 오르겠다는 비전인 '반도체2030'을 발표한 점을 언급하며 “과거 경험에 비춰보면 어려운 시기일수록 제일 중요한 것은 강력한 리더십"이라고 강조했다.
이 부회장은 지난 몇 년간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데 이어, 코로나19와 미·중 무역전쟁 격화 등 불확실성이 최고조에 달한 최근에도 투자를 멈추지 않고 있다.
최고경영자층과 전문경영인의 역할 정립도 필요하다고 짚었다. 전문경영인 입장에선 사업이 적자를 보거나 업황이 불황인 상황에서 몇 조 원 이상의 과감한 투자를 제안하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삼성전자의 미래 과제에 대해선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것”이라며 “열심히 노력하는 것 외에 세상의 트렌드를 잘 보고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