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란 일자 표시하는데 이력까지 표시케 해 비용↑”
올해부터 ‘달걀 이력제’가 시행됐다. 기존 달걀 껍데기에 산란 일자를 표시하던 것에 더해 사육, 도축, 포장, 판매 등의 단계별 이력을 확인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소·돼지에 대해서만 시행되던 축산물 이력제를 이를 닭, 오리, 달걀까지 확대 적용했다고 이해하면 쉽다. 소비자는 닭, 오리, 달걀의 포장지에 표시된 12자리의 이력번호를 축산물 이력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에 입력하면 생산자, 도축업자 등 정보를 조회할 수 있다.
이력제를 어긴 업체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이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당초 농림축산식품부(농식품부)는 7월 1일부터 단속을 예고했으나 달걀 생산·유통 관련 단체들의 반발로 단속은 12월 31일까지 유예됐다. 정책 시행과 업계의 반발을 조율할 시간은 5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만난 한충협(44) ㈜푸른 대표는 이력제가 달걀 생산·유통 업체들에 이중 규제로 작용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한 대표는 부친이 40년 운영한 양계장을 물려받은 양계 2세다. 경북 영천에서 양계장을 운영하고 있고, 2016년부터 생산에 더해 유통까지 사업을 확대했다. 현재 대한양계협회 22대 집행부에서 부위원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한 대표는 달걀 이력제 이전에 산란 일자 표시제가 생겨난 배경부터 설명했다. 2017년 8월 터진 ‘살충제 달걀’ 파동이 그 배경이다. 달걀에서 살충제 성분이 검출되자 정부는 달걀 껍데기에 산란일 표시를 의무화하는 것을 대책으로 마련했다. 2019년 2월부터 시행된 이 제도는 생산 농가와 사육환경을 나타내는 6자리가 표시와 함께 산란 일자 4자리(월/일)가 표시되는 것이다.
한 대표는 “전 세계 어느 곳에서도 산란 일자 표시를 강제하는 나라는 없다”며 “모든 것을 소비자 입장에서 생각하면 지나친 제도라는 게 없겠지만, 생산 농가들은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달걀 산란 일자 표시제의 주무부처는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다. 달걀 이력제는 농식품부가 ‘가축 및 축산물 이력관리에 관한 법률’를 개정해 올해부터 시행하고 있다. 농가들은 두 개의 제도가 다르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는 “농림부에서 올해 말까지 일단 단속을 유예키로 했지만, 이중규제이고 잘못 만든 정책”이라고 꼬집었다. 지금도 식약처 앱으로 산란 일자를 넣으면 이력을 확인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식약처와 농림부가 합의를 못 하고 밥그릇 싸움을 한 결과 농가만 피해를 보는 셈”이라며 “어차피 만들어진 정책이고, 예산이 들어갔기 때문에 정부도 없앨 수 없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한 대표는 경북 영천에 있는 자사 양계장에서 하루에 15만 개의 달걀을 생산하고 있다. 생산 농가와 유통까지 합쳐 직원 20명이 일하고 있는데 이력제 시행으로 최소 인력이 2~3명 더 필요해졌다고 토로했다.
이 때문에 달걀 가격이 더 오를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미 양계 농가 업계는 고질적인 공급 과잉을 겪고 있다. 국내 하루 달걀 소비량은 4000만 개로 4200만가량만 생산하면 되는데 현재 농가들은 일일 9000만 개를 생산할 수 있다.
한 대표는 “정부가 할 일은 이런 공급 과잉 문제에 대책을 내놓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식량 안보의 관점에서 정부가 정책을 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원유가격 연동제를 예로 들었다. 2013년부터 시행된 이 제도는 시장 수급과 무관하게 우유 생산비만 고려해 원유가격을 조정하는 것으로 우유 수요가 감소해도 낙농가는 타격을 덜 받는다.
한 대표는 “우유처럼 농가를 위한 정책이 필요한 때”라며 “농가를 파산에 빠트리는 게 아닌, 생산비라도 보존해 주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