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생' 오너가ㆍ창업주 CEO 이어 '90년대생'도 경영 나서… 디지털에 익숙ㆍ수평적 관계 형성ㆍ직원과 융합 기회 모색
미국의 세대 연구 전문가인 린 랭카스터와 데이비드 스틸먼은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를 “가장 획기적이며 지금까지와 다른 신세대”라고 분석했다. 그들은 “X세대(1965~1981년 출생)가 출현하며 기성세대에 큰 충격을 줬는데, 이는 밀레니얼 세대의 출현에 비할 바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가장 획기적인 세대’가 어느새 직접 창업에 뛰어들거나, 가업 승계를 통해 기업 경영에 나서고 있다. 80년대생이 부장급부터 대표이사까지 경영 전면에서 성과를 내는 가운데 서민정 아모레퍼시픽 과장(1991년생)과 농심 신동원 부회장 장남 신상렬 씨(1993년생) 등 90년대생 Z세대도 참여가 활발하다.
학계와 재계 전문가들이 분석한 차세대를 이끌 MZ세대(밀레니얼+Z세대) 경영인의 경영 키워드는 크게 ‘디지털 친화적 성향’과 ‘수평적 관계 지향’, ‘실용성 추구’ 등 3가지로 압축된다.
◇혁신을 사랑하는 ‘디지털네이티브’…디지털 기술 거부감 없어=MZ세대 경영진들은 컴퓨터와 인터넷, 스마트폰 등이 갖춰진 시대에 태어나거나 자라나 디지털 기술이나 언어를 모국어처럼 익힌 디지털네이티브(Digital Native)다.
이들은 본인의 전공 영역과 무관하게 디지털 기술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 이를 통해 사업을 변화시키고 신사업을 추진하기도 한다. 혁신에 두려움도 없다. 그들에게 기술 발달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치과의사 출신인 이승건 비바리퍼플리카 대표(1982년생)가 ‘공인인증서 없는 송금’을 고민하며 출시한 금융 서비스 앱 토스가 1700만 명이 사용하는 종합금융 플랫폼으로 진화한 건 ‘디지털네이티브 경영인’이 혁신을 이끌어낸 대표 사례다.
국내 최대 온라인 패션커머스 무신사를 키워낸 조만호 대표(1983년생)도 ‘인터넷 덕후’ 출신이다. 신발 마니아였던 그는 2001년 인터넷 커뮤니티 프리챌에 패션, 운동화 커뮤니티를 만들어 사람들과 공유했다. 2006년 이를 웹진 형태로 발전시킨데 이어 2009년 커머스 기능을 도입했고, 이는 오늘날의 유니콘 기업 무신사가 됐다.
성태윤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밀레니얼 세대는 어린 시절부터 디지털에 익숙한 세대이기에 기술을 활용하고 이를 통해 생활 편의성을 높인다”며 “디지털 기술에 대해 기본적으로 유연한 자세를 갖고 있는 게 이들의 특징”이라고 분석했다.
◇직원과 수평적 관계 형성하는 ‘대표·오너가’=한국 경제의 발전을 이끌어온 1세대, 2세대 기업인들은 강력한 추진력과 수직적 리더십을 바탕으로 기업을 성장시켰다. 그 과정에서 강압적인 태도나 ‘불통’이 ‘권위’와 ‘카리스마’로 포장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반면 최근 MZ세대 경영인에 대해 재계에서는 “말이 통한다”고 평가한다. 한 재계 관계자는 “젊은 경영진의 경우 뭔가를 말했을 때 반응이 있기 때문에 편하다”라며 “실제 어떤 아이디어를 제공했을 때 ‘저도 이것 알아요’라고 반응하며 (대화가) 수월하게 이뤄진다”고 말했다.
그들은 협업에 익숙하다. 어릴 때부터 수많은 사람과 소통하며 성장해왔기 때문이다. 이은형 국민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저서 ‘밀레니얼과 함께 일하는 법’에서 “밀레니얼 세대는 뭔가를 함께 하거나 모르는 사람과 소통하며 의견 교환을 하는데 거리낌이 없다”라며 “혼자여도 한편으론 연결돼 있는 것이 그들에겐 자연스럽기 때문”이라고 했다.
직원과는 수평적인 관계를 지향한다. 김슬아 대표(1983년생)가 이끄는 마켓컬리에서는 누구도 직함으로 불리지 않는다. 회사 직원들은 김 대표를 ‘소피(Sophie)’라고 부른다. 일부 대기업에서 부르는 ‘님’자도 붙이지 않는다. 김 대표는 정해진 자리도 없다. 마켓컬리 본사에 처음 방문하는 사람은 대표와 직원 자리를 구분할 수 없다.
신동원 농심 부회장의 장남으로 지난해 농심에 입사한 신상렬(1993년생) 대리는 올해 진급해 경영기획팀에서 근무하고 있다. 농심 관계자는 “일반 직원과 마찬가지로 입사 초기 공장에 다니면서 실무를 배웠다”며 “다른 직원들과의 협업에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의 장녀로 그룹전략팀에서 일하는 서민정(1991년생) 과장도 마찬가지다. 그는 베인앤컴퍼니에서 일하다 지난해 과장으로 아모레퍼시픽에 입사했다.
◇“대면보고 필요 없어요”… ‘실용성’ 강조= 식품업계에서 10년 넘게 근무해온 A씨는 젊은 경영진의 경우 업무상 실용적인 면을 중시하는 경향이 뚜렷하다고 전했다. A씨는 “예컨대 몇년 전만 하더라도 경영진에 보고하려면 문서를 하드카피로 프린트하고, 따로 결재서류를 만드는 게 기본이었지만 지금은 다르다”며 “대면 보고 자체가 드물고, 대부분의 소통은 메신저로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젊은 경영진의 경우 비대면이 더 편리하고, 즉각적인 소통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김동녕 한세예스24홀딩스 회장의 막내딸로 지난해 말 한세엠케이를 이끌게 된 김지원 대표는 업무 효율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그는 사내 커뮤니케이션 강화를 위해 IT 기업에서 주로 활용하는 협업 툴인 ‘컨플루언스(Confluence)’을 도입했다. 이 프로그램은 기존 그룹웨어에 비해 편의성과 접근성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MZ세대 경영진들은 불필요한 ‘절차’와 쓸데없는 ‘형식’을 업무 방해 요소로 인식하고 있는 셈이다.
김익성 한국유통학회 명예회장(동덕여대 교수)는 “MZ세대 경영진들은 디지털 기반 플랫폼 아래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며 “이들은 플랫폼 안에서 직원과 융합, 협력해 발전의 기회를 모색한다는 특징이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