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21)는 게임 배틀그라운드를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시작했다. 프로게이머 생활을 하던 지인을 본 이후 프로게이머가 되는 것이 꿈이다. 친구들과 꾸린 팀이 PGS베를린 예선대회와 한 게임부품회사에 주최한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대면이 어려워져 회사와 게임용 음성채팅 프로그램 ‘디스코드’를 통해 계약했다. 법적 조항에 대한 설명 없이 스폰서십에 대한 얘기만 들었다. 그렇게 회사와 스폰서십을 맺고 훈련하던 중 느닷없이 팀이 해체됐다. 현재 A씨는 하릴없이 군 입대를 준비 중이다.
한국은 e스포츠 강국으로 손꼽히는 나라다. 공중파 방송에 프로게이머가 출연해 자신의 직업을 설명하기도 한다. 자연스레 프로게이머를 꿈꾸는 지망생이 늘어나고 있지만, 이들이 실제 프로게이머가 됐을 때 계약 조건을 살펴보는 방법을 안내하는 통로는 찾아보기 어렵다.
◇불공정계약 논란 그 후…실효성은 의문 =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달 13일 ‘이스포츠 표준계약서(3종)’ 고시제정안을 행정예고했다.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LoL)’ 미성년자 프로게이머 선수 카나비(본명 서진혁)의 불공정계약 문제가 불거진 이후 나온 후속 조치다. 카나비 선수를 중국 프로팀 징둥게이밍(JDG)에 임대하고 이적료를 챙기기 위해 카나비 선수의 전 구단 그리핀이 위력을 행사한 사건이었다. 등록 일주일 만에 국민청원 20만 명을 돌파하자 LoL 프로 리그인 LCK(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스 코리아)를 주관하는 라이엇게임즈도 관련 내용에 대해 사과하고 5월 15일 ‘e스포츠 프로선수 표준계약서’를 발표했다.
표준계약서가 마련됐지만 이에 대해 지망생들이 접근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e스포츠과가 있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B씨(20)는 “라이엇에서 LCK 표준계약서를 만들긴 했지만 아직까지는 프로게이머 지망생들이 어떻게 해야 본인들에게 유리한 계약을 할 수 있는지를 잘 모르고 있다”며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다는 열정만 너무 강해서 다른 것에는 신경쓰지 못한다”고 목소리를 냈다.
프로게이머가 되기도 어렵고 된 후에도 활동할 수 있는 기간이 짧아 계약 등 부대사항에 대해 살피기 어렵다는 것이다.
김영현 아현산업정보학교 e스포츠 학과장은 “프로게이머가 보기에는 화려하지만 상위 0.0087%에 속해야 프로게이머 언저리에 발을 걸칠 수 있다”며 “이 경지에 다다르기 위해 하나에 몰입하지 않고는 살아남기 어렵다”고 말했다.
프로게이머를 지망했던 B씨는 이어 “카나비 선수의 불공정 계약 사건이 터졌을 때 계약과 관련된 수업을 이틀 정도 들은 적이 있다”며 “학과 담당 선생님께서 당시 사건과 e스포츠 시장 외 다른 불공정 계약 사례들에 대해 설명해주신 적은 있다”고 설명했다. 덧붙여 “프로게이머가 되기 위해 다닌 학교와 아카데미에서 위 사례 외에는 계약과 관련해 교육을 받은 적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계약 등 프로게이머 실제 처우 알리는 곳 드물어 = 프로게이머 지망생들을 위해 계약 관련 내용들을 안내하는 곳도 불명확하다. 프로게이머가 되기 위해 지망생들이 많이 찾는 한 게임 아카데미의 부원장은 “구단과의 계약은 사실 아카데미와 상관이 없다. 계약 조건에 대해 조언을 할 순 있지만 참견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라며 “계약이 보통 구단과 1:1로 진행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외국의 경우 프로게이머 매니지먼트사가 있어 관련 내용을 보조하고 있는 만큼 관련 매니지먼트사를 설립할 계획이 있다고 밝혔다.
게임 리그를 주관하는 한 회사의 홍보팀 관계자도 “e스포츠 선수들을 위한 표준계약서가 있지만 실제 교육을 하고 작업을 하는 건 구단”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관련 소양교육을 하려 했지만 코로나 때문에 변수가 생겼다”고 말했다.
김국찬 문화체육관광부 게임콘텐츠사업과 사무관은 “e스포츠 선수 표준계약서가 확정된 후 해설의 성격을 지니는 지침서를 배포할 예정”이라며 “관련 교육 프로그램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마저도 대부분 계약을 앞두거나 이미 체결한 선수들을 위한 것으로, 프로게이머 지망생들을 위한 교육이나 안내는 찾아보기 어렵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은 “계약 문제가 불거지는 것도 유명한 프로게이머가 된 다음의 이야기”라고 지적했다. 구단에서도 계약조건을 까다롭게 따지는 지망생들을 굳이 선발할 이유가 없고, 지망생들은 계약 문제보다 일단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어 하기 때문에 계약 내용을 등한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어 “지망생이나 프로게이머 데뷔 초기 단계부터 선수들을 보호하려면 관련 협회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B씨는 “다른 프로지망생을 보며 한때는 제대로 된 환경에서 후회 없도록 열심히 했으면 좋겠다고 바랬던 적 있다”며 “이런 열정을 돈으로밖에 보지 않거나 산업 차원에서 이용해 먹으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며 사각에 놓인 프로게이머 지망생에 대한 관심을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