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요는 줄었는데 가격은 천정부지...달러만 아는 금값 비밀

입력 2020-08-09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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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금 제품 수요는 줄고 있는데도 국제 금값은 천정부지로 뛰며 사상 최고가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금을 살 때 결제하는 미국 달러 가치가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금값 추이.
세계금위원회(WGC)에 따르면 세계 최대 금 소비국인 인도의 보석 수요는 올해 상반기에 전년 동기 대비 60% 줄었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봉쇄로 보석상들이 문을 닫은 데다 실업률 상승 등으로 소비자의 구매력이 떨어진 영향이다.

인도와 함께 세계적인 금 소비국 중 하나로 꼽히는 중국도 마찬가지다. 올 상반기 중국의 보석 수요는 전년 동기보다 52%나 감소했다. 수요가 왕성했던 리먼브러더스 사태 직후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이처럼 위축된 실수요와 대조적으로, 금값의 국제 지표인 뉴욕 선물은 7월 말에 처음으로 온스당 2000달러를 돌파하며 9년 만의 최고치를 경신했다.

투자 자금이 금으로 몰리면서 가격을 끌어올리고 있다. 금값을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에 올 1~7월 유입된 자금은 491억 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95%를 서구 펀드가 차지했다. 미국의 주식거래 앱 ‘로빈후드’를 통해 투자 경험이 적은 이들까지 금을 샀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앞으로 18개월 안에 금값이 3000달러를 찍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수요가 부족한데 금값 추가 상승에 베팅하는 건 기축 통화인 미국 달러 가치가 더 떨어질 것이라는 확신이 배경에 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 연준)는 3월 코로나발 금융시장 동요에 대응해 무제한 양적 완화에 나서면서 미국 정부의 경기부양책을 위한 국채 발행 증가를 사실상 지지하는 구도가 됐다. 연준은 또 기업의 자금조달을 지원하는 채권 매입에도 착수했다. 이뿐 아니라 달러 확보가 시급한 나라의 중앙은행과 양자 간 통화 스와프 계약을 맺어 최대 4500억 달러를 공급했다.

그 결과, 연준이 미국 내에 공급하는 자금의 양을 나타내는 ‘본원 통화’는 5월에 5조 달러 이상으로, 2월 말 대비 약 50% 증가했다. 미국 이외 중앙은행이 외환보유액으로 갖고 있는 달러를 합산한 세계의 달러 유통량 ‘월드 달러’도 5월에 사상 최대인 8조 달러에 달했다.

이는 코로나19 충격으로 기축 통화로서 달러의 지위가 흔들리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세계를 지탱하기 위한 대량의 공급은 달러의 신임을 묻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적했다. 노무라증권의 고시미즈 나오카즈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금값이 오르고 있다기보다는 달러 가치가 떨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미국 정부는 지금까지 3조 달러 규모의 코로나19 대책을 내놓고, 여전히 실업 대책을 위해 추가 재정 지출을 검토 중이다. 연준은 정부의 국채 발행을 지원하기 위해 국채를 매입하고, 계속 달러를 뿌릴 것이 뻔하다. 이에 미국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0.5%로 사상 최저치로 하락(가격은 상승)했고, 금값은 계속 뛰고 있다.

미즈호종합연구소의 노구치 다케히로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니혼게이자이신문에 “결국 달러의 신인도를 흔들 것”이라며 “7월 달러 약세와 금값 상승은 위험에 대한 시장의 메시지”라고 지적했다.

▲달러지수 추이
제 2차 세계 대전 전까지는 영국 파운드가 기축 통화의 자리에 있었지만, 전후에는 달러로 교체됐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3월 말 현재 회원국이 보유한 외환보유액 중 달러 보유 비율은 62%로, 2위 유로의 20%를 크게 웃돈다. 다만 미국 달러 비율은 70% 정도였던 20년 전에 비해 10% 정도 하락, 그 지위는 상대적으로 저하됐다.

한편, 씨티그룹 이코노미스트들은 금값이 3분기에 온스당 2100달러를 돌파하고, 향후 6~12개월 안에 2300달러에 이를 수 있지만, 3000달러에 도달하는 데는 의구심을 나타냈다. 이들은 “달러 가치 하락으로 금값이 오른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지만, 다른 국가의 달러 수요가 여전히 충분하다. 달러 가치가 낮지만, 다른 통화도 모두 마찬가지이며, 여전히 달러에는 엄청난 특권이 있다”고 주장했다.

국제 금값은 6거래일 만에 하락했다. 7일 뉴욕상품거래소에서 12월물 금값은 전날보다 온스당 2%(41.40달러) 떨어진 2028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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