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여신지원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은행권의 리스크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부실 가능성이 큰 기업들의 '시한폭탄' 대출을 계속 떠안을 경우 위험요인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현재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만기 연장·이자 유예 조치가 재연장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18일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코로나19 관련 여신 지원 실적' 자료에 따르면 2월 이후 이달 13일까지 만기가 연장된 대출(재약정 포함) 잔액은 모두 35조792억 원으로 집계됐다. 대출 원금을 나눠 갚고 있던 기업의 '분할 납부액' 4조280억 원도 받지 않고 미뤄줬고, 같은 기간 이자 308억 원도 유예했다. 여러 형태로 납기가 연장된 대출과 이자 총액이 39조1380억 원까지 늘어난다.
현재 금융권과 금융당국은 미뤄둔 대출과 이자의 9월 말 이후 처리 방법을 놓고 논의 중이다. 금융당국의 태도를 살펴보면 '재연장·유예' 쪽으로 기울고 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 12일 김태영 은행연합회장, 신용길 생명보험협회장, 김용덕 손해보험협회장, 김주현 여신금융협회장, 박재식 저축은행중앙회장 등 금융협회장들과 간담회를 열고 9월 재연장에 대한 협조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간담회 후 은 위원장은 "대체로 대출 원금과 이자 연장이 필요하다는데 공감대가 형성됐다"며 "좀 더 의견수렴을 해서 가급적 이달 안에 (재연장을) 발표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은행권의 생각은 다르다. 일각에서는 부실 가능성이 큰 기업들의 '시한폭탄' 대출을 계속 떠안는 데 대한 걱정과 불만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특히 은행권은 대출 만기 재연장보다 이자 재유예에 더 민감하다. 이자조차 내지 못하는 기업의 부실 가능성이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이자는 내겠지만 코로나19로 원금을 갚기가 벅차니 좀 미뤄달라'는 경우는 원금 만기 연장으로 숨통을 틔워주면 은행 입장에서도 향후 대출 상환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당장 이자도 못 내겠다'는 기업은 긴급 조치가 필요한데 이자 유예로 '연명치료'만 할 경우 추후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다.
금융 당국은 이자 유예 규모(308억 원)가 크지 않아 은행 입장에서 부담이 적다고 주장한다. 이는 은행의 판단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예컨대 A은행의 경우 지금까지 코로나19 관련 누적 이자 유예액이 약 40억 원뿐이지만, 이 이자 뒤에 연결된 대출 원금은 2000억 원(450여개 기업)이 넘는다. 따라서 기업이 이자 유예 신청을 했다면 이는 내지 못한 이자액의 평균 50배에 이르는 대출 원금이 부실 위험에 놓여있다는 신호로 봐야 한다는 게 은행의 주장이다. 최악의 경우에도 보증과 담보 등으로 은행이 원금 100%를 날리지는 않겠지만 건전성 지표 악화는 피할 수 없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당국도 이자 유예가 연장되면 은행 리스크가 커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현재 은행에 재연장을 요청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 같다"며 "당국이 결정을 내리면 은행들은 따라야 하는 입장이라 속만 태우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