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업계에 따르면 28일 첨단재생바이오법(이하 첨생법)의 시행을 앞두고 관련 기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첨생법은 재생의료 관련 연구개발 과정에서 일정 요건을 충족할 경우 신속한 제품화를 지원하고, 원료 채취부터 시판 후까지 전주기 안전관리 체계를 마련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근본적인 치료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되는 재생의료 시장은 급격히 성장 중이다. 글로벌 시장 조사 기관에 따르면 전 세계 재생의료 시장은 2023년 약 10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재생의료의 주요 대상인 희귀의약품 시장은 2020년부터 2026년까지 연평균 10.8%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300조 원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그동안 적합한 제도적 기반이 미비해 연구개발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다른 나라와 격차가 벌어지는 아쉬움을 낳았다.
◇첨생법 시행 반기는 기업은 어디? = 첨생법이 적용되는 재생의료 영역은 줄기세포·면역세포·체세포 치료제, 유전자 치료제, 이종장기 등이다. 이를 개발하는 기업은 첨생법 시행에 따라 상용화 속도를 단축할 수 있다.
줄기세포 치료제 관련 기업은 파미셀, 차바이오텍, 안트로젠, 에스씨엠생명과학, 메디포스트, 코아스템 등이 주목받고 있다.
파미셀은 세계 최초 줄기세포 치료제 '하티셀그램-AMI'를 개발한 기업이다. 현재 알코올성 간경변(2상 완료), 발기부전(2상 승인), 전립선암(1상 승인), 난소암(1상 승인) 등에 대한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메디포스트 역시 상용화된 무릎 골관절염 치료제 '카티스템'을 보유하고 있다. 카티스템은 세계 최초 동종 줄기세포 치료제로, 지난해에만 159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발목 관절로 적응증을 확대하기 위한 임상 3상이 진행 중이다. 주사형 무릎 관절염 치료제는 내년 상반기 임상 1상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며, 기관지폐이형성증 치료제 '뉴모스템'은 국내 임상 2상 단계다.
2014년 설립된 에스씨엠생명과학은 독자 개발 플랫폼 줄기세포 분리기술과 줄기세포 치료제 제조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과 이탈리아의 신약 개발 기업을 차례로 인수하며 면역세포 치료제 사업에도 진출했다. 현재 7개의 줄기세포 치료제 파이프라인과 2개의 면역세포 치료제 파이프라인을 보유하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속도가 빠른 만성 이식편대숙주질환 치료제 후보물질은 첨생법을 통해 2022년 임상 2상 완료 후 조건부 품목허가가 예상된다.
안트로젠은 지방유래 중간엽 줄기세포를 3차원 배양해 시트 형태의 치료제를 개발했다. 당뇨병성 족부궤양과 이영양성 수포성 표피박리증 치료를 목표로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다. 특히 당뇨병성 족부궤양 치료제는 지난 5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첨단재생의료치료제(RMAT)로 지정됐다.
면역세포 치료제는 GC녹십자셀, GC녹십자랩셀, 엔케이맥스, 유틸렉스 등이 개발하고 있다.
GC녹십자셀의 '이뮨셀엘씨'는 지난해 매출 300억 원을 돌파하며 국내 개발 세포치료제 가운데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 간암, 췌장암, 유방암, 난소암 등으로 적응증을 확장하는 임상을 진행 중이다. 지난 7월 임상시험계획(IND)을 제출한 췌장암 임상 3상부터 첨생법의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회사 관계자는 "첨생법 시행으로 첨단바이오의약품 개발과 허가에 관련된 애로사항이 해소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면서 "임상 과정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이 가시화되면서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녹십자그룹 계열사인 GC녹십자랩셀은 자연살해(NK)세포를 활용한 면역항암제 'MG4101'을 개발 중이다. MG4101은 간암 임상 2a상과 리툭시맙 병용 1/2a상 단계로, 각각 올해 하반기와 내년 상반기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체세포 치료제를 개발하는 바이오솔루션은 지난해 자가유래 연골세포 치료제 '카티라이프'의 식약처 조건부 품목허가를 획득했다. 테고사이언스는 동종유래 세포치료제 '칼로덤'을 보유하고 있다.
유전자 치료는 외부에서 유전자를 도입해 결핍되거나 결함이 있는 유전자를 교정하거나, 세포에 새로운 기능을 제공해 질병을 근원적으로 치료하는 기술이다. 제넥신, 헬릭스미스, 바이오니아, 올릭스, 올리패스 등이 개발 중이다.
이 가운데 제넥신은 면역항암제 '하이루킨(IL-7)'으로 키트루다와의 병용투여 등 1/2상 임상시험을 다수 진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코로나19 DNA 백신과 치료제 임상에 착수하기도 했다.
◇'시작이 반'이라지만…아직 갈 길 멀다 = 첨생법의 세부 시행령, 규칙, 고시 등은 아직 입법예고 단계다. 일각에서는 허가 지원보다는 안전성 확보에 중점을 둬 기업들의 가시적인 성과를 확인하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도 있다. 신속처리 대상으로 지정될 경우 우선 심사, 맞춤형 심사, 조건부 허가 등의 혜택은 기존 약사법과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투약 후 장기추적조사에 대한 의무 규정이 반영된 점은 기업들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란 평가다.
우리보다 먼저 관련 정책을 마련한 일본은 희귀질환에 대한 재생의료 치료제에 대해 임상 1상에서 안전성만 확인하면 조건부 품목허가를 내준다. 반면 우리나라는 기존과 마찬가지로 임상 2상까지 마쳐야 한다. 또한, 임상 1상 단계부터 장기추적조사를 요구하는데, 기업이 부담해야 하는 막대한 비용에 비해 효용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첨생법이 시행된다고 해서 갑자기 허가가 난다거나 일본처럼 세포시술이 늘어나기는 어렵다"면서 "현 단계에서는 관련 기업들의 연구가 더 활발해지고 글로벌 경쟁력이 강화된다는 점이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관련 기업들은 정부가 현장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해 첨생법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일찌감치 재생의료 산업에 대한 지원을 시작한 미국, 유럽, 일본 등 의료 선진국을 따라잡으려면 보다 융통성 있는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병건 첨단재생의료산업협의회 회장은 "첨생법이 드디어 시행된다는 점은 의미가 있지만, 앞으로 하위법령 정비 등이 더욱 중요하다"면서 "정부와 기업간 대화를 통해 안전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산업에 유익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