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협 논의 평행선…상황 장기화 시 국민에 피해 전가…"철회·강행 양자택일은 외통수"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 발표로 촉발된 의·정 간 갈등이 결국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의 재파업으로 이어졌다.
수련의·정공의로 구성된 대전협은 21일부터 4년차(내과·가정의학과는 3년차 포함) 전공의를 시작으로 무기한 집단휴진에 들어갔다. 22일부턴 3년차, 23일부턴 1·2년차 전공의들도 진료를 중단할 예정이다. 여기에 대한의사협회(의협)는 26일부터 3일간 총파업에 돌입할 계획이다.
파업 사유는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등 보건·의료정책 일방통행이다. 의료계는 의대 정원 확대와 국립공공보건의료대학원(공공의대) 설립, 한방첩약 국민건강보험 급여화, 원격의료 추진을 ‘4대악’으로 규정하고 지난달부터 단체행동을 이어가고 있다. 19일에는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과 최대집 의협 회장이 간담회를 가졌지만 접점을 찾지 못했다. 복지부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겠다며 발을 물렸지만, 의협은 4개 과제 전면 철회·폐기를 요구하며 맞섰다.
당초 의대 정원 확대에 찬성했던 병원단체는 정부와 의협 모두에 ‘양보’를 호소하고 있다. 국립대학병원협회, 대한사립대학병원협회, 사립대학교의료원협의회,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 등 20일 공동 입장문에서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 등 쟁점이 있는 정책 진행 중단하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의료계와 논의하겠다고 발표해달라”며 “의협과 대전협은 집단휴진 등 단체 행동을 일단 보류하겠다고 선언해달라”고 촉구했다.
4개 과제에 대한 논의가 진전되지 않으면 의료계는 단체행동 강도를 지금보다 높인다는 계획이다. 의대·의전원생들은 다음 달 1일 예정된 의사 국가시험 실기시험 응시를 거부하고, 전공의들은 전원 사표를 제출하겠다는 입장이다. 초기 단체행동을 의협이 주도했다면, 현재는 의대생·전공의들이 대정부 투쟁의 전면에 선 모습이다.
현재로선 정부도, 의료계도 ‘답이 없는’ 상황이다. 정부가 의협의 요구를 받아들여 4개 과제를 전면 철회·폐기한다면 지역 간 의료격차 해소, 필수분야 의료인력 확충 등은 사실상 물 건너간다. 의협에서 내놓은 대안이라곤 수가체계 개선을 통한 지방·필수분야 지원유인 제공 정도다. 반대로 정부가 과제들을 철회하지 않아 의료계가 집단행동을 강행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 전가된다. 대체인력 운영을 통한 필수의료 공백 해소도 단기 처방에 불과하다.
이상이 제주대 의전원 교수는 의·정 양자 간 협의에 앞서 공론화를 통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정부는 의사 부족, 지역 격차 등 명분이 분명하니 의료계가 강하게 반대하진 못할 것이라고 본 것 같은데, 완벽하게 오판한 것”이라며 “기존 의협 지도부의 리더십이 빈약했던 건 사실이지만, 이미 개원의와 전공의들은 인구 감소와 이로 인한 경쟁 심화, 한의계의 존재 등으로 기존에 누리던 사회적 지위가 흔들릴 수 있다는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상황에 정부가 일방적으로 정책을 발표한 건 의협에 명분을 준 것이다. 의협이 해선 안 될 일을 추진하는데도 의사들이 동참하는 건 이런 이유”라며 “단체행동의 명분을 줘놓고 단체행동을 막으려면 외통수에 걸려들 수밖에 없다. 이제라도 의료 소비자로서 국민이 참여하는 공론의 장을 만들어 국민적 공감대를 만들고, 그것을 토대로 합리적인 방향으로 정책을 재설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