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대응과 경기 침체 회복, 미중 무역전쟁 속 일본 처세 급선무...한일관계 개선도 과제로 -당장 재정.통화 정책엔 변함 없을 듯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오랜 지병 때문에 중도 사임을 발표하면서 일본은 갑작스럽게 대선 정국에 돌입했다. 새 총리가 되는 집권 자민당 총재 후보로는 이시바 시게루 간사장과 기시다 후미오 정조회장, 고로 다로 방위상,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 등 4인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일본 국내외 언론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등 발등의 불과 함께 해묵은 과제까지 산적해 있어 차기 총리는 누가 되든 엄청난 도전을 마주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29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전날 지병인 궤양성 대장염이 악화해 국정에 지장이 생기는 사태를 피하겠다며 총리직에서 사임키로 했다. 그러나 일본 언론들이 총리 사임 소식을 미리 보도하면서 차기 총리에 대한 추측은 훨씬 전부터 난무했다.
NYT는 현재 유력 후보군이 있으나 여전히 ‘다크 호스’가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아베 총리 역시 현재 거론되고 있는 유력 후보들에 대해 “매우 유망한 후보”라면서도 자신이 선호하는 후보 이름을 지목하지 않아 제3의 인물 부상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차기 총리가 되는 자민당 당수 선출은 9월 중순이면 판가름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누가 차기 총리가 되든 아베 총리의 그늘에서 벗어나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일본 역사상 3000일 가까운 재임 기록을 달성한 유일한 총리인 데다 그간 쌓은 아베의 당내 존재감이 결코 작지 않은 까닭이다. 마이클 쿠섹 일본 템플대 아시아학과 조교수는 NYT에 “아베 총리가 자신의 라이벌들을 정말 작게 보이도록 조종하는데 수년을 보냈다”며 인도 정치인 고 자와할랄 네루의 말을 인용해 “아무 것도 자라지 못하게 하는 거대한 반얀트리”라고 묘사했다. 반얀트리는 오래될 수록 줄기가 굵어지고 뻗어가는 영역도 넓어지지만, 신성시되고 있어서 아무도 손을 댈 수 없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가 재임 8년 가까이 당내에서 그런 존재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아베 총리도 최근에는 심한 부침을 겪어왔다. 가장 큰 실책이 코로나19에 대한 부실한 대응이다. NYT는 차기 총리는 아베의 코로나19 대응에 불만을 가진 일본 국민들과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날까지 일본에서는 코로나19 확진자가 약 6만8000명, 사망자가 약 1300명 나왔다. 아베는 천 마스크 배포(일명 아베노마스크)와 여행 장려 정책 ‘고투 트래블’(Go To Travel) 등으로 물의를 빚었다.
또 NYT는 차기 총리가 무역전쟁을 벌이는 미국과 중국의 복잡한 관계를 이어받게 된다고도 했다.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싱크탱크인 윌슨센터의 고토 시호코 동북아시아 수석 연구원은 “트럼프 시대 글로벌 외교에서 인성은 특히 중요하다”며 “아베 후계자 중 누구도 일본의 외교적 이익을 위해 아베처럼 개인적 인맥을 능숙하게 이용할지 확신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역대 정권 중 거의 최악으로 치달은 한일 관계도 차기 총리가 풀어야 할 과제로 꼽힌다.
다만, 누가 정권을 물려받든 ‘아베노믹스’ 하에서 진행돼온 재정·통화 정책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침체에서의 회복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정책을 바꾸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2012년 12월 출범한 2기 아베 정권은 일본 경제의 디플레이션 탈피를 내걸고 ‘대담한 금융정책’과 ‘기동적인 재정정책’, ‘민간투자를 자극하는 성장 전략’ 등 3개의 기둥을 골자로 아베노믹스를 추진했고, 일본은행은 2013년 3월 취임한 구로다 하루히코 총재 아래서 아베 정권과 보조를 맞춰 대규모 금융완화를 계속해왔다.